* 안썼다고 하기엔 사실 당보귀환 컨셉은 과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 그래서 다른 애들보단 좀 짧음
* 원ㅅ 경운ㅂ 근처 새소리 들리는거에 영감받음
1. 내가 짐승같지도 않은 것들을 유언이랍시고 남겼구나
당가의 자제.....가 아니라, 어느 방계의 시비로서 눈을 뜬 당보. 정신차려보니 어설픈 손으로 잘못 날린 비도에 머리 처맞고 기절했다가 3일만에 깨어났다고 함. 물론 눈 뜨자마자 전쟁이 어찌되었냐는 둥, 평소 쓰지도 않던 어르신 말투를 쓰는 둥 머리를 잘못 다쳐도 한참을 잘못 다친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아가면서 겨우겨우 자신이 죽은 뒤의 전쟁을 조사해나감
결론만 보자면 당보는 당가에 다시금 크나큰 실망을 하고야 말았음. 이 써글놈들이 뭐? 마지막 혈사에 참전을 안해? 화산에서 빠지라고 했다고 아 넵 감사합니다 냅다 큰절박고 쪽팔림도 모르고 빠졌다고?? 그것도 암존이 죽었다는, 날 핑계로 대면서 슬슬 꽁무니를 뻈고, 천마는 죽였지만 정작 최전선에서 싸웠던 화산은 괴멸 직전까지 몰렸었다고?? 근데 뒷방에서 구경만 하던 놈들이 그 은혜조차 모르고 화산이 이러나 저러나 그냥 방치를 해? 아니, 반대로 쪽팔려서 그런가?? 괜히 마주하면 부끄러움만 늘어나니 일부러 눈을 피한건가?
다행 중 다행으로 매화검존만은 큰 부상을 입고서라도 생환했기에 망정이지, 화산이 망하기라도 했다면 당보는 당장 영생을 추구하면서 저승에서 형님과의 해후를 조금이라도 늦출 방법을 찾아다녔을 것임. 암만 80년 평생을 파락호마냥 살아왔다지만 장문인과 무각주의 최측근으로 살아온 짬바가 있었기에 검존의 지휘 하에 화산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음. 다만 마지막 순간에 외면하려던 다른 문파들에게 거의 증오에 가까운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 된 화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소림마저 설설 기며 구파에서 입지는 확고하지만 묘하게 겉도는 신세였음
당보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가 무사한지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당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피해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 사천을 뛰쳐나왔음. 당연하지만 당가는 괜히 일 커지는게 싫었기에 넉넉하게 보상을 해 주었고, 당보는 모두 금전으로 바꾸고 소매 안에 단단히 챙긴 채 최소한의 물자만 챙겼음. 당보에게 지금 최우선 과제는 화산으로 가는 것이었고, 형님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해야만 했음
2. 매화검존을 뵈러 오신 모든 분들은 화산의 귀한 손님이십니다
그러니 어떤 부담도 가지지 마시고 편히 지내다 가십시오. 헌앙한 얼굴의, 22대 대제자 백천이라 소개한 이의 안내를 받으며 당보는 화산에 발을 들일 수 있었음. 놀랍게도 화산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을 거의 회복했음. 다 무너져 아예 최신식으로 건물을 다시 올린 당가와는 다르게도. 하긴, 그도 그런가. 화산 안에서라면 눈을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양반이 돌아왔으니...... 그래도 천마의 목을 직접적으로 베어 넘긴 검존을 찾아오는 이가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인지 참배객들을 위한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기에 당보는 감사히 그 곳을 쓰기로 했음. 당보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사당이 다름아닌 청명이 본래 지내던 전각이었던 점임. 당시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간 나머지 이후로 화산은 직접적인 사제관계를 맺기보단 무학에 재능이 있는 이들 대여섯을 스승으로 한 단체수련을 기초로 하게 되었고, 때문에 전각 대다수가 비어버리게 될 바에는 차라리 사당으로 쓰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검존을 위한 제단을 꾸미게 된 것이었음. 물론 그런 세세한 사정을 당보가 알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조상이 당시 매화검존의 덕을 입어 전쟁의 불길 속에서 목숨을 건졌으나, 감히 그게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던 터라 지금껏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었다며, 최근에야 우연히 그것이 매화검존임을 알게 되어 100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은혜를 갚기 위해 화산에 올랐다는 거짓말을 들어가며 당가에서 뜯어온 금자를 검존의 사당에 바친 당보는 아마도 화산의 어린 제자가 어설프게 그렸을법한 검존의 초상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음. 당보의 기억과 이목구비는 꽤나 닮았지만, 형님이 저런 표정을 지으며 살아왔던가? 전쟁 중에는 자주 지었던 것 같긴 하지만, 평소에는 좀 더-
아무 걱정도 없이 해맑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게, 퍽이나 어울리는 사람이었는데
처연함과 상실감이 잔뜩 들러붙어, 다른 이들과 다르게 오로지 매화 한 송이가 장식의 전부인 검은 도복을 입은 채 종이 안에서 제 앞을 내려다보는 모습에 당보는 100여년 전의 어린 화산의 제자가 된 기분이었음. 아마 그때의 아해들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언제나 든든하게 남아있어줄 것 같던 큰 어른들이 저 멀리 차디찬 산속에 묻히고,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천하제일인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으로 돌아와...... 감히 편히 쉬시라고,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지도 못한 채 그저 다 죽어가는 장로님의 도움을 받아 문파를 세워야 하는 자신들이 얼마나 작아 보였을지. 그들에게 있어 매화검존 청명 장로님은 언제나 내려다보는 사람이었을 것이었음. 한 때, 마음에 여유가 넘치다 못해 감히 매화 무서워서 산 밖으로 나설 생각조차 안하는 녹림마저 심심하다는 이유로 때려잡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몰려오면 그 튼튼한 무릎을 굽히고 시선을 맞춰주던 이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 탓에 아해들을 내려다보게 되었을 때, 과연 형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 적어도 그 눈빛엔, 더 열심히 하라는 타박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음을 당보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뿐이었음
형님. 이 꼴이라 알아보긴 어렵겠지만, 나 당보요. 거 죽기 전까지 형님 등만 졸졸 따라다니던 당가 놈 말이오.
보이는 것과 달리 잔정이 너무 많아서 지나가던 마을의 어린 꼬마 이름까지 쉬이 잊지 않던 사람이 자신을 잊을 리 만무한데도 당보는 혹여나 제 이름 두 자를 기억에서 지웠을까 무서워 사족을 붙였음
당가 애들을 십만대산에서 물린 것이 형님이라 들었소. 암만 내가 애들 좀 챙겨달라 청했건만, 자기 목숨이 달린 전장에서 애들 물리고 화산 사람들 다 죽고. 그러다가 기어이 팔 한짝 날려먹고 오면 내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소? 내 언젠가 이렇게 몸 안챙기고 다니다 기어이 일 칠거라 생각했지. 이 당보, 형님보다 쪼오끔 덜 살긴 했어도 세상 보는 눈은 그리 좁지 않다 이겁니다.
적당히 당가 애들 그래도 챙겨줘서 고맙다고 한 마디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건만, 당보는 계속해서 청명의 초상을 앞에 두고 넋두리를 이어나갔음. 소림 떙중놈들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나보오. 길 가다가 만난 땡중한테 화산에 참배하러 가는 길인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짓는 표정이 참으로 볼만 하더구만. 무당이라고 뭐 다른 줄 아시오? 그놈들은 양심을 십만대산에 같이 묻어버린 것이 분명하오. 계속 태극검제 그놈이 사실 형님과 비슷한 기재이자 엇비슷한 업적을 쌓았다고 선동하던데, 거 지나가는 길에 그래서 검존이 교주 대가리 11개 딸 때 검제는 뭘 했는지 물었더니 대답을 흐리길래 실컷 비웃어주고 왔수다. 에헤이. 설마 이 아우가 종남 놈들을 잊었을 리 있소? 그놈들은 또 뭘 잘못 먹었는지 어설프게 꽃잎을 만들고 있기에 젓가락으로 냅다 파훼해 주었소. 자기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놈들이 옆 문파 무학을 왜 베끼려고 드는지 참......
아무튼, 100년이 지나도 형님을 잊지 않고 인사하러 오는 아우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이겁니다. 화산 아해들은 잘 해주고 있소. 아마 형님이 가르친 것이겠지만, 기초부터 튼실하게 수련하는 모습을 보니 화산은 쉬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오. 형님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젠 그냥 그 선계라는 곳에서 사형제들이랑 낮잠이나 자고 술이나 퍼마시면서 사시오
당보의 혼잣말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레 창문이 열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음. 덜컹. 향에 붙은 불티까지 꺼져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에 혹여 검존 초상이 찢기기라도 할까봐 그 앞을 막아선 당보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음. 짐승의 울음소리같기도 하고, 시린 칼에서 나는 쇳소리 같기도 하고, 억지로 설움을 눌러 참는 울음소리 같기도 한 것이-
형님? 당보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름을 입에 담고야 말았음
3. 귀곡성, 이라고 칭하더군요
감히 그분들께 '귀'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적어도 화산 안에서는 그리 칭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백천은 당보에게 그리 설명했음. 100여년 전 유일하게 십만대산에서 생환한 검존은 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화산에게 제 모든 것을 전해주기에 여념이 없었음. 그나마 무재를 보이는 이 두엇을 데려다 청진진인이 남긴 교본과 자신의 가르침을 섞어 무학이 끊기지 않도록 해 주었고, 화산의 사업체들을 지원해주며 빠르게 정상화가 될 수 있도록 섬서를 복구했으며, 정치질로 화산을 끌어내리려 하는 다른 문파들을 상대로 감히 그 댓가를 치르게 한 뒤에야 검존에겐 휴식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음.
문제는 그 다음이었음. 여느 날처럼 거동이 불편한 검존에게 세숫물과 식사를 준비한 제자 하나는 문득 방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 이후로 검존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었음. 어쩌면 자신의 죽음마저 제자들에게 짐이 되게 하지 않고자 한 검존의 마지막 배려일 것이라며 추측할 뿐이었으나, 어쨌든 전쟁 이후 썩 좋다고는 하지 못할 몸으로 화산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냈으니 그저 조용한 곳에서 등선하고자 한 작은 소원일 것이었음. 아무튼 그들은 방을 정리하고, 그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 검존의 모습을 그리고, 창고 안에서 향로 하나를 찾아와 모래를 채워 작은 제단을 만들었고....... 바로 어제와 같이 갑작스런 돌풍이 들이닥쳐 창문의 잠금쇠를 부수었음
사실 잠금쇠가 부서진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았음. 어른들이 떠난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된 수리를 하지 않았으니 녹슬대로 녹슨 못이 나무에서 뽑혀져 나가는 것이 그리 큰 대수라고. 다만 제자들이 쉬이 창문을 닫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당보가 들었던 것과 같은, 귀곡성과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음. 처음에는 검존의 등선을 알게 된 마교가 쳐들어 온 것이 아닐지 하던 이들은 며칠이 지나도 침입이 없자 반대로 검존께서 십만대산에서 잠들었던 선조들을 찾아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꺼내놓기 시작했음. 귀신을 퇴치하라고 있는 도사놈들이 하기엔 참으로 민망한 소리였지만, 어쨌든 그 뒤로 종종 바람이 강한 날이면 들려오는 그 울음소리를 그저 선조분께서 또 한 분 돌아오셨겠거니- 하며 믿고 있었음. 다만 영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양민들이 듣는 날에는 어김없이 귀곡성이라며, 냅다 제자 하나를 붙잡고 퇴마해달라 요청했다가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일이 빈번하다던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당보는 문득 이런 말을 해주는 백천의 표정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알아챘음. 당보의 재촉에, 단 한 번도 그 소리를 꺼리지 않았던 모습에 신뢰를 얻은 백천은 이내 숨기려 했던 말을 꺼내게 되었음. 사실 검존께서 등선하신 이후부터 들려왔던 소리라 전해졌지만, 과거 검존의 가르침을 받았던 선조들의 일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많다는 점이었음. 가끔 날씨가 좋지 않아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종종 산 어딘가에서 처음 듣는 울음소리를 들었다던가 하는 기록이 꽤나 공통적으로 언급되고 있었으니, 합당한 의심이었음. 다만 괜히 제자들의 불안감을 키울 필요가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던가. 힘든 이야기를 해주어 고맙다며 당보는 인사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자마자 화산의 산문을 나서게 되었음. 좀 더 지내도 된다는 이들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당연하지만-
형님이 어찌 지켜낸 화산인데. 조금의 위협이라도 있다면 제거해야만 한다.
100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지만 어디 마교는 그간 예고라 할법한 일이라도 벌이고 발호했던가. 당보는 산문에서 배웅하던 이들이 들어가자마자 방향을 틀어 소리가 들려왔던 곳을 향해 내달렸음
4. 왜 이리 슬프게도 울고 계시오
아주 당연하게도 겨우 내단만 만들어낸 연약한 육신으로 험난한 화산을 돌아다니기란 쉽지 않았음. 그나마 청명과 돌아다닌 경력이 있어 샛길이라도 알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당보는 유난히 다른 산봉우리들 사이에 끼어 쉬이 들여다보기 힘든 봉우리를 억지로 오르고 있었음. 절벽을 뚫고 자라난 나무를 잡고, 틈새에 억지로 발을 끼워넣어가며 오르다 보니 깨닫게 된 사실이었는데, 이 봉우리엔 명확하게 사람이 오른 흔적이 있었음. 당장 당보가 딛고 있는 이 틈새도 성인 남성의 보폭에 맞게 군데군데 패인 것이,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분명히-
이 위에 있겠군.
기어이 절벽을 기어 올라간 당보는 비좁은 정상에서 검존, 청명의 흔적을 찾아내고야 말았음. 정교하게 새겨진 매화가 선명한 녹슨 검. 자주 하고 다니던 머리끈이 묶여 휘날리는 것에서 청명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할 당보가 아니었음. 그리고 그 뒤로 장성한 매화나무가 한 그루. 때가 되지 않아 꽃은 없이 이파리만 무성했으나 여기저기 떨어진 매실의 흔적이 나무가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지 대변하는 것 같았음. 당보는 이내 검 옆에 털썩 주저앉아, 사실은 사당에 올리려고 했던 술을 꺼내들었음
여기가 바로 형님의 무덤이었구려.
종종 청명이 그러던가. 자신은 검수일 수는 있어도 도사일 수는 없어서, 다른 사형제들이 등선하여 선계에 오를 때에도 자신만은 그리 가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기에 지금 살아있을 때 즐길 만큼 즐기고 나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여러모로 자기 평가에 박한 사람이었으나 당시의 당보는 그에 동감했었음. 당장에 술과 고기를 즐기고, 포용으로 교화하는 대신 힘의 논리를 따라 움직이던 사람이 등선하려고 했으면 당장 선계에 이미 올랐던 이들이 반발을 할 것이라며. 그래서 뭐라더라. 대충 나무 한 그루 묘비로 삼고 돌아가면 되지 않겠냐고 했던가.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매화나무가 흔들리며 청량한 소리를 내었음
형님. 76년 쯤 살고 50년쯤 형님을 알아온 사람으로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이며 하나의 행동만으로 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무식하고 성급한 짓이나,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이를 멍청하다 할 수는 있을지언정 아무렇지도 않게 악인이라 부를 수는 없소.
저 멀리 이름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 존재조차 모르는 어느 이들을 위하여 죽을 것이 분명한 전장에 발을 들이미는 짓을 하는 이를 그냥 '검수'라 칭하는 이가 있을지언정 도인이 아니라 쉬이 폄하할 수도 없소.
제 의지가 없이 행한 선한 일을 위선이라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게 일궈낸 일의 가치를 퇴색하게 만들지는 않소.
세상사 모든 일이 상대적이고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장단이 있다지만, 절대적인 다수가 동일한 평가를 내린다면 굳이 그 흐름을 거스를 필요가 없소.
그러니 형님은 사형제를 지켜내지 못했음에 슬퍼할지언정 그를 자신의 죄악으로 돌리지 마시고, 남은 화산의 아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지언정 자신을 악인으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또 다른 돌풍이었음. 강한 바람이 주변의 산봉우리를 타고 휘몰아치자, 녹슨 검에 부딪히며 그 틈새로 나게 된 피리와도 같은 쇳소리.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이었으나 당보는 그저 어딘가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자신의 유일한 형님께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건네야만 했음
그러니, 그리 서럽게 우는 것은 그만 하시고 편히 쉬시오, 형님.
5. 가십시다. 이 당보가 안내하겠소.
당보는 다시금 화산으로 돌아와 백천을 만났음. 다른 이들을 물리고 독대를 청한 당보는 품에 잘 갈무리했던 검, 검존의 비석과도 같은 물건을 꺼내 보이며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말해주었음. 아무리 화산을 부흥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다 하지만, 80년을 같이 지낸 사형제들을 하루아침에 모조리 잃은 슬픔을 어찌 숨길 수 있겠냐며, 혹여나 다른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게 소음이 심한 날만 골라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서 홀로 설움을 토해내며 남에게 보이지 않게 울었을 검존의 이야기를. 다만 제 마지막을 짐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그저 검 한자루를 묘비마냥 바위 틈새에 꼿아둔 것이 강한 바람과 만나며 그 울음을 내었다는 사실에 백천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음. 그저 우연이라 칭하면 될 일이었으나, 화산에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가진 화산의 제자로서 어쩌면 죽어서도 제 슬픔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한 선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음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당보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깨닫고는 화산의 처우를 물은 백천은 당보의 입이 달싹이는 것을 기다렸음. 이내 당보는 녹슨 검을 제 품에 다시 넣곤 이르길,
검존의 사당을 없애시지요
그리고 홀로 떨어져있는 검존의 명패를 다른 사형제들과 함께 두어달라며 간곡한 부탁을 했음. 유일한 생존자가 사형제들의 죽음을 발판으로 추대받는 것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검존께선 사형제들을 그리 애정했노라 덧붙였음. 다만 그저 이대제자에 불과한 백천이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당보는 이제 그 '귀곡성'이라 칭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근거로 삼아 밀어붙여보라 조언해주었음
이제 이 뒤는 화산 아해들의 결정이지 않겠습니까?
다시금 산문을 나서 섬서 어디께를 돌아다니던 당보의 혼잣말이었음. 여전히 녹슨 검을 품은 채, 전쟁 중 드문드문 말하던 소소한 소원을 이루러 가는 길이었음. 어디, 장강 어귀에 생선요리를 잘 하는 집이 있으니 가보자고 했던가. 바다 근처에서 생선을 날로 먹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비무 대회에 참여해 본 적은 없었으니 애들 참가하는거 구경이나 해보자고 했었고, 또-
하나하나 세어보던 당보는 이내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음.
이제 시간은 많으니, 가십시다. 이 당보가 안내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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