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게만
두 번째 천마의 목을 친 직후에는 화산의 수호신으로서 받들어졌으나, 시간이 지나고 문파가 소멸하면서 제단이 사라져버렸고, 이제는 그저 한 명의 무당이 모시는 그냥저냥한 신이 되어버렸음. 화산의 마지막 장문인이 청명의 신주를 모셨고, 그 이후로 화산을 기억하면서 청명을 모시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모셔오다가 현대에 넘어와 환생한 청문이 청명이를 모시고 있었음. 과거 연이 있었던 탓인지, 청명이를 만나자마자 청문은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고, 무당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고 있는 청명이는 하지 말라고 단상을 뒤엎고 자신을 모시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청문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청명이를 위한 신당을 차림
청명이는 천마의 목을 벤 업적으로 인해 무신이 되었기에 악귀를 퇴마하고 성불시키는 것이나 저주를 해주하는 데에 유능하지만 누군가에게 축복을 내리거나 점을 치는 데에는 큰 재주가 없었음. 그냥 딱 평범한 신 평균치정도. 현대로 넘어와서 누군가가 악귀에 씌였다면 당집이 아니라 대형병원을 찾는 것이 당연시되고, 그나마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만 몇 있을 뿐 미래나 현재의 해결책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청문의 신당은 큰 인기는 없었음. 청명이는 계속 그만두고 하던 일(청명이를 만나기 전에 그럭저럭 잘 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똑같이 청명이를 만나고 기억을 되찾은 청진에게 넘기고 본인은 신당을 차렸음)이나 하라고 설득하지만 청문은 그저 청명이가 좋아하는 간식들을 매일 신당에 채워넣기만 함. 덕분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들 청명이가 동자신인줄 앎..... 근데 옆에 술병도 같이 있어서 이게 동자신인지 아닌지 헷갈림......
그리고 시간이 더욱 흘러, 곧 청문의 명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청명. 신으로서 이를 억지로 늘리는 것은 금기였고, 청문 본인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음. 다만 자신이 죽고 난 뒤 청명이를 모실 사람이 없어 소멸할 수도 있어 그 전에 후임을 찾고 싶었음. 청명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였는데, 하나는 지금처럼 자신을 모시는 무당을 두고 현세에 남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격을 높여 아예 선계로 등선하는 것이었음. 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곧 청명이는 신으로서의 격을 잃고 소멸하게 될 것이었고, 이미 화산의 매화검존과 천마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 현대에서 격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없었음
그리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청명이의 신주(암향백매화. 원래 암매검이었는데 현대에 도검 소지 금지당하면서 백매화로 옮겨감. 암매검은 박물관 전시중.... 인데 청명이 이야기는 쏙 빠지고 그냥 옛날에 썼던 검 정도로만 알려져 있음)를 품은 채 후임을 찾아다님. 처음에는 청진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지만, 청진이 빠져버리면 청문이 세웠던 사업체(놀랍게도 주식회사 화산이었다)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고, 그럼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버리기에 거절함. 다음으로는 당보. 당가는 더더욱 놀랍게도 세습무를 하고 있었고, 차기 세습무로 확정된 사람이 당보였음. 물론 우연찮게 청문의 신당에 들어갔다가 청명이를 보고 전생을 기억해냈고, 기꺼이 세습 포기하고 청명이 모시겠다는거 대가리 깨버림...... 니가 나 모시면 느그 신이 나한테 생사결 요청할 기센데, 저거 없애도 되냐? 하니까 깨갱하고 물러난 당보..... 아무리 그래도 가문의 신을 없애는건 좀.....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하게도, 어느 대학가 근처를 지나가다가 현화산.... 그러니까 22대, 23대 화산의 제자들과 마주침. 청명이는 대학 동아리 선후배 관계로 몰려다니던 오검즈를 보자마자 마주치지 않으려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유난히 영기가 강했던 유이설의 눈에 딱 걸려버림.
....... 사질?
? 이설 선배. 그게 무슨 말..... 응?
어, 어어?
...... 청명아?
한 명이 물꼬를 트자마자 영향을 받은건지, 단체로 영안이 트여버린 화산의 제자들. 청문은 이들을 몰랐기에 청명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리하여 자리를 마련하게 됨. 청명이는 그 때 십만대산에서 눈을 감은 이후로 화산의 수호신으로 있다가, 그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연이 있는 사람들 사이를 전전하며 모셔지다가, 또 다른 신당을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혹시 찾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영기가 약해지고, '약해진 신'이라는 좋은 먹잇감을 노린 악귀들에게 먹히거나 혹은 조용히 소멸할 것이라고. 그게 아니면 아예 청명이의 존재가 흔히 아는 신처럼 오르내리면서 선계로 완전히 등선하는 수밖에 없다고.
청명이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모시겠다 나서는 제자들. 그러나 청명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뜯어말림. 청문이 그랬을 때는 차마 끝까지 청문에게 반항할 수 없어서 그랬다지만, 오검즈는 아니니까. 그러다 네가 사라지면 어쩌려고 그러냐, 다른 이들이 도와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면서 설득하려 들었지만 완고하게 필요 없다고 버티는 청명이. 과거라면 모를까 현대의 무당은 사기꾼으로 몰리기 딱 좋으면서 엄청난 인내와 고행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본인 능력이 출중해서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지도 않으니 오로지 청명 본인만을 모시기 위한 길에 저 어린 아해들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음.
그 이후로 청문의 신당에 들락거리며 설득을 시도한 오검즈. 백천은 대사형으로서 먼저 청명이를 보낸 책임을 지겠다 하지만 본인이 나이도 배분도 더 많았다며 컷. 유이설 쳐내는게 제일 힘들긴 했지만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낸 것을 이리 쉽게 포기할 거냐고 말렸음. 윤종과 조걸도 마찬가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가는 청문의 옆을 지키면서 청명이는 이제 오검즈에겐 고개를 돌리지 않았음. 오검즈는 올 때마다 간식과 술을 채워주었지만 그걸 입에 대는 일도 없었음
그러던 중 조걸이 '아오. 차라리 청명이 녀석을 아예 등선시키는게 더 쉽겠어요' 라는 말을 하고 그에 힌트를 얻은 화산의 제자들. 전생의 영향인지 네 명 모두 과거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는데(백천-사학과, 유이설-고대국어, 윤종-고고학과, 조걸-문창과. 문창과인 이유는 무협지에 꼿혀서 글쓰다보니 그렇게 됨), 청명이의 존재가 위태롭게 된 원인, 즉 화산이 잊혀졌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면 청명이를 모시는 무당들도 늘어날거고(왜 우리나라에서 바리공주 모시는 무당들이 여기저기 많은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격이 높아지면 모시는 사람도 많아진다는 설정으로.....) 아예 선계로 보내버릴 수도 있을테니까. 그 때부터 그들은 전생의 기억과 지식을 살려 화산의 존재를 알리고자 함
유이설은 지인인 당소소에게 과거 화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건너건너 들은 당보가 대충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알고 당가에서 보관중이던 기록물을 지원해줌. 윤종의 고아원 동창이자 진짜 스님이 되어버린 혜연 또한 소림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주었고. 백천은 당시 역사서를 뒤져가며 정마전쟁을 입증하고자 했고, 유이설은 당가와 소림에서 받은 자료들을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윤종은 아예 화산을 올라 과거 전각과 유물들의 흔적을 발굴해냄.
조걸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는데, 어차피 화산파의 존재를 입증해봤자 관련 학계에나 알려질 뿐, 일반인들에게 퍼지기는 어려울 것을 예상한 청진의 아이디어였음. 트로이 전쟁에 관한 것처럼, 이미 신화로서 알려져 있던 것이 실제로 증명된다면 파장은 훨씬 클 것이라는 것. 그래서 조걸은 당보의 조언과 편집을 받아가며, 청명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최대한 화산의 역사와 정마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고증에 맞춘 현대 무협(물론 얘네 입장에선 실화인데 현대인중에 누가 검으로 매화피운다는 소리를 믿겠냐구요 ㅋㅋㅋㅋㅋ) 시리즈 '매화검존'을 발간했고, 사천당가(유명한 세습무라 그런가 돈도 많고 인맥도 쩔었음) + 주식회사 화산(청진의 머리는 현대에도 유효했다) + 사해상사(이번생에도 있는집 자식인 조걸)의 홍보 및 언플을 통해 소설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데에 성공함. 실제로 재미도 있고 조걸을 포함한 화산파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이 그대로 녹아있어서 한 번 궤도에 오른 후 거의 판무 독자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히게 됨
그리고 한창 '매화검존'이 최전성기 인기를 구가할 때, 드디어 오검즈의 피땀어린 결실이 하나의 논문으로서 발표됨. 역사서에 기록된, 아직도 논쟁거리인 100년 전쟁에 대하여. 100년의 간격을 두고 두 번 벌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대체 어느 세력이 맞붙은 것인지,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피해 규모나 그 실체에 대해 전혀 남은 것이 없었던 것을 야사라 칭하는 일반 기록물들, 종교 시설 등에 보관된 당대 사람들의 일기, 구전된 이야기 같은 것을 모으고 그 야사가 사실이라는 유물과 흔적까지 완벽하게 증빙해낸 그 논문에는, 두 번의 전쟁이 '정마대전'이라 불리었으며 '천마'라는 신을 모시는 '마교'라는 집단에 '화산'이라는 도가 문파가 맞서 싸웠고, 그 중심에 '청명'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시했음. 100년의 간격이 있었음에도 두 전쟁 모두 '청명'이라는 강한 검수가 전장을 지배했으며, 특히나 1차 정마대전 당시 활동했던 '청명'의 별호가 '매화검존'이라는 사실까지 발표되자 소설 '매화검존'이 실화였다? <<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짐. 당연하지만 소설 발매 시기와 논문 발표 시기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짜고친거 아니냐는 말도 많았지만, 몇 번의 교차검증 결과 논문은 사실이며 심지어 박물관에 그냥 '검'이라고 보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은 2차 정마대전의 '화산검협 청명' 이 사용했던 '암향매화검'이라는 사실까지 새로이 발견됨. 오검즈는 '화산이라는 문파의 존재에 대해 조사하는 도중 문창과 후배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라고 발표했고.
사실 당가나 다른 야사에 나오는 자료 원본 내용은 소설 '매화검존'에 더 가깝긴 했는데, 당연하지만 사람이 하루에 천리를 달리고 물을 밟고 뛰어오르며 검으로 매화를 피우는건 현대 사학계에서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역사서에는 '종교 단체끼리의 충돌', 'IS와 비슷한 성향의 과격한 종교단체 마교가 세를 넓히자 그에 대항하여 양민의 편에 선 도가 화산파', '화산파의 중심이었던 청명' 정도로만 기록되고 매화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비유라고 해석함(단군신화의 곰파 호랑이파 이런거). 어쨌든 사람들에게 '매화검존 청명'이라는 존재가 인식되고, 그에 대한 연구는 물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지하게 되자 청명이는 본인이 현세를 떠날 때가 되었음을 깨달음
여기 남아있어봤자 결국 누군가의 신당에 앉아있어야 하는 신세고, 이 시퍼렇게 어린 아해들 인생 망칠 생각도 없으니. 청문의 장례가 끝나고 그 혼이 좋은 길을 찾도록 인도해준 청명이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온 아해들을 바라봄. 청진과 당보같은 구화산 사람들, 오검즈를 비롯한 현화산 사람들까지. 격이 올라가며 단장을 새로이 한 청명이는 도관에 비녀 대신 암향백매화를 꼿고 이들에게 인사를 함. 언젠가 현세에서의 삶이 질렸을 때, 올라올 계단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노라고. 선계의 매화 아래에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겠노라고.
그렇게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지었던 청명이는 드디어 선계에서의 편안한 안식을 얻을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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