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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Reilu_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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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9. 18:44 화산귀환

* 그냥 옴니버스같은 기묘한 찐도사 청명이가 보고싶었다

* 근데 사실 배경이 중ㄱ이 아니라 한ㄱ같음;;

 

 

 

 

1. 무당으로 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이제야 겨우 짧은 문장을 구사할 수준이 된 어린 청명이. 어른들 눈에는 그저 귀엽기만 한 어린아이지만, 가끔 보여주는 면모 때문에 장로님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 남들보다 과하게 활발하고 성격이 더러운건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시킬 수 있으니 상관 없었지만, 아주 가끔, 화산을 찾아오는 양민들을 향해 이상한 말을 날리는 일이 있었음. 심지어 그 때는 어린애들 특유의 짧은 어휘가 아니라 진짜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어휘를 구사하는데다가 존대가 아니라 반말을 던짐

 

 상중에 왜 자리를 비워? 당장 돌아가서 아버지께 싹싹 빌고, 한 달 동안 상복 벗지 마.

 집에 있는 그 면경, 갖다 버려. 아니, 태워

 내년 이맘때까지 물 조심해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식당에서 소금과 팥 한 주머니씩 받아가

 

 이런 식. 처음에는 무례하게 무슨 짓이냐고 장로들이 꾸짖었는데, 양민들은 그래도 명망높은 도가 문파인 화산의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니 들어서 나쁠 것 없다며 따르는 사람과 애가 뭘 알겠냐며 무시하는 사람들로 나뉘었음. 그리고 청명이의 말을 듣지 않은 양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려오는 일이 빈번했음.

 

 이쯤되자 청문을 필두로 몇몇 제자들이 청명이의 처우에 대해 논의함. 화산에서 거둔 아이이니 물론 본인이 원한다면 화산에서 키울테지만, 이런 능력이 있다면 반쯤 속가인 화산보단 차라리 무당쪽에 보내 제대로 훈련할 수 있게 하는것이 어떻겠냐고. 지금이야 별 일이 없었다지만, 강한 영안에는 그에 따르는 위험 또한 분명히 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결국 청명이의 생각이 완고했기에 화산에서 계속 키우게 됨.

 

 청명이가 검을 잡고 매화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런 일은 줄어들었고, 사형들은 청명이의 능력이 억제되었다며 겨우 안심하는데 사실은 아님. 검을 배우면서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운거지, 능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어릴때처럼 본인이 인지하기도 전에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누를 수 있게 되었을 뿐. 이후 청명이는 남몰래 점을 치거나 종종 양민들을 상대로 기이한 현상들을 해결해주고 다녔고, 무인들은 매화검존으로서의 청명이만 알 뿐이었지만 양민들 사이에선 고강한 도사님으로 통하기도 했음

 

 그러나 결국 자신과 사형들의 최후를 알고도 피할 수 없었던 청명이는,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2. 사숙, 문에 방울을 달아

 

 장문인의 명으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룻밤 머물게 된 객잔. 상당히 허름했지만 다른 객잔은 다 차버렸고, 이러나저러나 지붕만 있으면 호사라는 도사들이라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짐을 푸는데, 화산의 도복을 알아본 주인이 간곡하게 부탁을 함.

 

 제 4살짜리 막둥이 아들이 매일 밤 뒷산에 있는 묘지를 향해 간다고. 연유를 물어도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억지로 막으려고 해봤지만 고작 4살 어린아이에게 20살이 다 되어가는 형과 아비인 자신이 달라들어도 막을 수가 없었다고. 물론 화산이 아니라 화산채 소속인 도복입은 산적들(?) 에겐 오히려 무서운 이야기인데, 뜬금없이 청명이가 애를 보여달라고 함. 대신 해결하면 밥, 숙박비, 술값을 안받는 조건으로.

 

 다들 어쩌려고 그러냐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함부로 하는거 아니라고, 당가에서도 그런 병은 들어본 적 없다고 말리는데 청명이는 아이의 눈을 딱 보더니 백천에게 말함.

 

 사숙. 가서 방울 두 개만 사와.

 응?

 뭐해? 빨리 안가고?

 아, 알았다.

 

 뭐가 됐든 청명이의 명이니 사숙 된 도리로서 따를 수밖에(?). 서둘러서 시장을 이잡듯이 뒤진 결과 막 정리중이던 매대에서 방울 두 개를 구해옴. 청명이는 방울 하나는 애 발목에 묶고, 다른 하나는 애가 자는 방 문에 매달라고 했음. 그리고 객잔 주인에게, 밤에 애가 나가려고 할 떄, 어느 방울에서 소리가 나는지 잘 살피라 이르고는 자러 올라가버림. 다들 당황해서 청명이에게 무슨 일 있으면 안되니까 차라리 방에서 지키는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청명이는 단호하게 자기들이 있으면 나타나질 않을거라며 일단 올라가있자고만 함.

 

 그리고 그날 밤, 소란에 눈을 뜬 오검즈는 서둘러 내려가는데, 신기하게도 청명이가 나타나자마자 건장한 사내 둘을 매달고도 걸어나가려던 아이가 풀썩 쓰러짐. 객잔 주인은 땀을 닦으면서 문에서 소리가 났다고 말함. 오히려 아이의 몸이 흔들리는데도 발목에선 방울이 울리지 않았다고. 그러자 청명이 물어봄. 그 무덤의 주인은 누구냐고.

 

 무덤은 주인의 조부이자 아이의 증조부되는 사람의 묘로, 굉장히 엄하신 분이었지만 막둥이가 태어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함.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하루 전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객잔 1층에서 상을 치르는 동안 2층 한구석에서 출산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는 청명이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아이가 100일을 채우기 전까지는 장례에 가지 말라는 소리는 알지?

 그, 그렇지만 저희 집의 큰어르신인데......

 하다못해 이웃집에 양해를 구하고 출산만이라도 다른 곳에서 했어야 했어. 아니, 장례를 다 마친 이후에 금줄을 치기만 했어도 괜찮았을 것을....

 

 청명이는 이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함. 사람이 죽은 직후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이 모호한 상태로 떠도는데, 이런 혼들이 제대로 먼 길 떠날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대접하고 배웅하는 것이 장례라고. 그래서 그 증조부라는 영감도 자신의 장례를 찾아왔는데, 문 앞에 금줄이 걸려있어 자신이 새로 태어난 아이라고 착각한 것이라고. 그런데 아이의 몸에는 이미 아이의 혼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어 들어가질 못하니 증조부는 엉뚱한 혼이 자신의 몸을 차지했다 생각해 아이의 혼을 내쫒으려 한 것이고, 아이가 기가 세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니 자신이 유리한 위치, 자신의 묘로 유인하려 한 것. 아이의 발목과 문에 방울을 단 것은 그 영감의 혼이 이미 들어왔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들어오려고 하는건지 알아보려 한 것이고, 다행히 아직은 아이의 몸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함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객잔 주인은 청명이의 말대로 시장을 돌아다녀 제일 좋은 재료들을 사다가 정성을 다해 제삿상을 차림. 그 앞에서 상중에 입는 삼베옷을 잘 차려입고서 가족이 모두 나와 이배를 올림.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인 막둥이의 손을 잡고 정식으로 소개함. 할아버님. 그렇게나 보고싶어하던 막내입니다. 자, 인사해야지? 왕할아부지 안녕하세요-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하고자 하룻밤 더 머무른 오검즈는 청명이를 의외의 눈으로 쳐다보며 이것저것 물어봄. 원래 이런거 잘 아느냐, 혹시 부모님이 무속인이나 무당파였냐- 하고. 청명이는 피식 웃으면서 옛날에는 더 심했는데, 요즘엔 능력이 많이 약해진거라고 대답해줌. 어릴 때는 보이면 보이는대로 제 몸도 통제하지 못하고 날뛰었었다고. 그렇게 청명이의 또다른 능력에 감탄했던 오검즈는, 이후에도 종종 그런 일에 휘말리게 됨

 

 

 

 

3. 미쳤어? 그런걸 대체 왜 가지고 와?

 

 응? 조걸이 놀라서 눈 떙그랗게 뜨고 있는데 청명이는 냅다 조걸 주머니를 뒤져서 작은 손거울을 하나 꺼냄. 얼마 전 명절을 맞아서 본가에 들렀던 걸이 받아온 물건인데, 조걸의 아버지 조평의 말에 따르면 창고 한 구석에 버려져 있었는데 사해상회 문장이 작게나마 들어가있어 조상의 물건으로 추측된다고, 혹시나 걸이 집안의 힘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라고 준 것이었음. 그러나 청명이는 면경을 한참 바라보더니 지나가던 유이설과 윤종에게 가서 소금 한됫박 받아오라고 시킴

 

 영문은 모르겠지만 소금을 한가득 담아오자 청명이는 그걸 거울에 냅다 뿌리기 시작했는데, 걸이가 항의하기도 전에 입을 다물고 말았음. 거울에 튕겨나간 소금이, 새까맣게 타버렸으니까. 한참을 뿌려도 소금이 계속 타버리자, 이번에는 식당 건물 지붕에 말린 있는 소금을 가져오라고 함.

 

 ?? 그런게 있었느냐?

 혹시 몰라서 내가 칠 주야에 한 번씩 말리는거 있어. 지금 널어둔거 말고, 그 뒤에 목함에 넣어둔 걸로 가져와!

 아, 알았다

 

 청명이 말대로 식당 지붕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리고 있는 소금과 그 옆에 이미 말린 것으로 보이는 소금이 든 목함이 있었음. 청명이는 그 소금을 받자마자 다시 거울에 막 뿌리기 시작했고, 대여섯 번 반복하자 더 이상 소금이 검게 타지는 않았음. 아직 소금이 남아있는 목함에 거울을 넣고 단단히 봉한 청명이는 이젠 조걸에게 대뜸 소리를 지름

 

 아주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나봐, 사형? 칼밥 먹고 살면 칼 맞아 죽을 생각이나 하지, 누군지도 모를 여자 원한을 왜 받으려고 지랄이야?

 

 평소보다 유난히 말이 더 험한 청명이에게 울컥하긴 했지만, 어쩐지 화산의 다른 애들도 청명이가 지금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어한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음. 청명이는 한참 화를 내더니만 한숨을 푹 쉬곤 내일 당장 사해상회로 떠날테니까 준비하라고만 함.

 

 갑자기 돌아온 아들을 반길 틈도 없이, 조걸의 아버지 조평에게 청명은

 

 색 옅은 단발에 왼쪽 눈을 다친 여자, 누구야?

 

 하고 물음. 조평은 영 모르는 눈치였는데 갑자기 조평의 옆에서, 선선대 사해상회 회장때부터 보필해왔던 어르신이 사색이 되어 대체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으셨냐 대답함.

 

 그 여자는 조걸의 고조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의 첩으로, 상회를 열기 위한 자금을 받기 위해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정실부인과 다르게 10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던 여인이었음. 그리 오랫동안 사랑을 했음에도 조걸네 고조할아버지는 상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선택해 정략결혼을 했고, 그 여인 또한 그의 행복을 바랐기에 첩의 자리에 만족하기로 했음. 하지만 꿈을 선택한 만큼 조걸의 고조부는 점점 첩에게서 멀어져갔고, 이미 첩의 자리에 앉은 그녀는 이제 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없었음. 그러던 어느 날 상회의 주 교역품을 정하기 위해 여러 물건들을 마당에 늘어놓고 시험하던 도중 사고가 나서 그 근처를 지나가던 여인의 얼굴에 큰 상처가 났음. 안그래도 과거의 애정에 기대어 사는 첩의 인생에서 몸에 큰 흉이 지는 것은 큰 문제였고, 그 날을 기점으로 여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함. 하필이면 그렇게 앓는 여인에게 조걸의 고조부는 조롱하듯 거울을 선물했고, 때문에 여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었다고

 

 그럼.... 그 거울이 설마-

 맞아. 사형이 가져온 그 거울이야.

 

 자신을 배신하고 조롱까지 한 사내의 후손에게 좋은 짓을 하겠어? 청명이의 말에 새하얗게 질린 걸이는 딸꾹질까지 하는데, 그 어르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었음. 여인이 죽고 나서 크게 상심하고 후회한 고조부는 이후 아직 토대밖에 잡지 못했던 상단을 바로 그 아들, 조걸의 증조부에게 물려주고 본인은 여인의 묘 근처에 머물며 평생 속죄하며 살았다고 함. 처음에는 그 여인의 저주라고 말할 정도로 온갖 악재가 닥쳤던 상회 또한 다시 자리를 찾았기에 여인이 고조부를 용서했다는 소문이 자자했음.

 

 그건 모르지. 진짜 용서한건지, 아니면 당사자가 아닌 자들에게까지 해코지할 생각이 없었던건지.

 어.... 거울이 그리도 위험한 상태라면 아직 용서하지 못한게 아닐까?

 아닐걸?

 

 그러면서 목함을 열어 거울을 꺼내든 청명이. 걸이는 기겁하고 피하려는데, 청명이는 손으로 사해상회의 문장과 그 아래에 적힌 여인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양각을 가리킴. 조롱의 목적을 담은 거울에 상회의 문장에 오로지 본인만을 위한 각인까지 새겨준다고? 아마 사형의 고조부는 다른 의미로 줬을거야. 어떤 모습이든 너는 너 자신이다, 상처가 더 심해지지 않게 잘 살펴라, 이런 거. 하지만 만약 당시에 그 여인이 이걸 발견하지 못했거나 그 의미를 몰랐다면? 스스로 조롱이라 여기고 그 원망을 거울에 담았겠지? 여인이 죽기 전에 오해를 풀었든, 죽은 뒤에야 고조부를 용서했든 상관 없이 이 거울은 그녀가 가장 힘들고 원이 많을 때의 모습을 담았던 물건이야. 이러나저러나 좋은 기운은 없다 이거지

 

 그러면서 대충 정화는 시켜놨지만 그 여인의 묘가 아직 남아있다면 거울을 돌려주고,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간소하게나마 제사를 치러주라 이르며 청명이는 돌아감. 자기 집안의 일이기에 걸이는 남았고, 조평은 상당히 돈을 들여 화려한 제를 지내주었음. 이후 조평이 화산에 보낸 편지에 따르면 분명 잘 보관했던 거울이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이상하게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걸이는 그 말을 보여주며 청명이에게 의견을 구했지만, 청명이는 그저 주인을 찾아갔을 뿐이라며 더는 말하지 않았음

 

 

 

 

4. 가장 믿는걸 따라가

 

 산을 넘어가는 중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마을. 늦은 밤인데도 사람들은 자판을 열고 있었고, 묘하게 음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모습에 다들 긴장하고 있었음. 가장 앞에서 걷던 청명이는 그런 오검즈에게 말함.

 

 뭐든지 좋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혹은 그냥 감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냥 가야겠다고 믿는 곳으로 향해

 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오검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었던 사형제들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기 때문임. 아무리 외쳐도 시장통엔 자신 뿐이었고, 오히려 그리 소리를 질렀는데 그 누구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음. 결국 청명이가 마지막으로 한 조언을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백천은 소리를 따라가기로 함. 자신만 남았던 시점부터 어디선가 방울소리가 들려왔는데, 주변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중에도 그 방향은 일정했기 때문이었음

 

 유이설은 시각을 믿음. 달빛에 생긴 자신의 그림자가 향하는 곳으로 움직임

 

 윤종은 손 끝에 느껴지는 온기를 따라감. 조걸은 그냥 직감을 따랐고

 

 당소소는 청명이가 먹던 산딸기 냄새를 쫒아갔으며, 혜연은 청아하게 들리는 목탁소리를 의지함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큰 나무 아래에 도달함. 청명이는 진즉 도착해 있었고. 나무는 어느 마을에나 으레 있는 수호목처럼 거대했고, 색이 바래긴 했지만 오색의 긴 천이 달려 있었음. 여전히 자신들이 무슨 일을 겪은건지 어리둥절해하는 오검즈에게 청명이는 씩 웃으며 뒤를 가리켰는데....

 

 시장의 사람들이 다들 퀭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음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지르고 있는데, 청명이는 그들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그저 나무를 바라보고 말함

 

 동이 틀 때까지 그늘을 빌리길 청합니다

 

 그리고 진짜 나무 근처로는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들. 동이 트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찬(?) 시장은 폐가만 남은 마을로 변하고, 그제야 긴장이 풀린 오검즈는 주저앉아서 사정을 물어봄

 

 뭐가 원인인지는 몰라도 마을이 쇠하면서 수호신 또한 여길 버렸고, 그 때문에 이런 깊은 산골에서 제대로 성불하지 못한 마을사람들이 생전과 같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 청명이는 씨익 웃고서 그래도 잘 찾아왔다며 나름대로 칭찬을 해줌. 신목을 집으로 삼아 지내던 수호신은 떠났지만 신목은 떠나지 못하기에 그 신목에게 부탁을 한 것이고, 산 자들을 지키는 사명을 가진 수호목은 기꺼이 제 곁을 내 주었다고. 

 

 그런데 우리가 제대로 찾아오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뭐, 저들 중 하나가 되는거지

 .......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감을 따르라는 둥 대충 말해도 되는거냐?

 아니지. 오히려 구체적으로 말했으면 끌려갔어

 

 의문 가득한 표정들에게 청명이는 답해줌

 

 이런 곳을 빠져나오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관심을 주지 않는거야. 죽은 것들과 산 것들의 세계는 달라.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인식한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그 경계가 허물어져버려. 내가 이정표를 정해줘버리면 다들 그걸 찾느라 주변을 살폈을거고,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관심이 갔겠지

 그럼......

 자기가 가장 믿는 것을 따르라고 했잖아. 주변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으라는 말이었어. 다들 그 희미한 감각을 쫒느라, 주변은 신경도 안쓰고 왔지?

 그렇지

 사람 또한 말하는 짐승이야. 말 못하는 것들보단 떨어지지만, 그래도 본능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해. 특히나 생존과 귀소에 대한 본능은 더더욱. 어디로 가야 돌아갈 수 있는지,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야. 거기다가 우리같이 자연을 닮고자 하는 도가 가르침을 따르는 자라면 대부분의 직감은 잘 들어맞아

 

 그럼 마지막으로 신목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돌아가자. 화산으로.

posted by 이드(Reilu_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