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청명이 괴롭히고 싶어서 쓰는 썰
* 청명아 미안하다!!
1. 장장 3여년에 걸친 마교와의 전쟁은, 다시금 화산의 손에 의해 종결을 맞았다
100년 전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띈 전쟁이었음. 문파끼리만 뭉쳐서 어떻게든 자리보전하다 깨달음을 얻은 고수들은 전멸당하고 속 좁은 것들만 윗대가리를 차지했던 그 때와는 달리 모든 문파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속에는 정파만이 아닌 사파와 중소문파까지 끼어 있었음. 그리고 그 모두를 이끌고 기어이 천마의 목을 베어낸 것은 화산의 어린 제자, 아무리 백자배의 대제자가 장문인을 맡고 있기에 항렬상으로는 일대제자에 속하지만 나이로 따지자면 타 문파의 이대제자 막내 쯤 될법한, 기어이 매화검존의 별호를 다시금 얻어낸 청명이었음
이미 중원에선 그 누구의 이견도 없는 천하제일인, 호사가들은 고금 제일이라며 추켜올려지던 청명은...... 천마의 목을 베기 위해 모든 기력을 쏟아부었고, 그렇게 전쟁이 마무리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 자리에 허물어졌음. 천우맹은 물론이고 그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문파, 심지어 사패련까지도 청명을 살리기 위해 온갖 수를 들이밀었지만 결국 청명은 매화가 만개한 어느 봄날에 그럴싸한 유언 하나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음. 자신들의 신을 죽인 불경한 이의 시체조차 남겨두지 않겠다는 마교의 발악은 그럭저럭 성과를 거두었기에, 마지막 마교의 목을 치고 청명이 쓰러졌던 곳으로 화산 사람들이 달려갔을 땐 청명을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음. 화산의 도복, 진녹색의 머리끈, 심지어는 암향매화검까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체들 사이에서 청명의 유품을 찾아내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었으며 전쟁 후의 뒷처리는 그보다 훨씬 시급한 일이었기에 백천은 울분을 깊이 삼키며 시신의 수습보다 양민 구제를 우선으로 삼았음
부상자들의 치료가 진행되고, 양민들이 새 터전에서 자리를 잡아 새 집이 다 지어질 무렵-
피난 중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한동안 혼수상태였던 어느 소년이 기적적으로 눈을 떴음
2. 아직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나
거진 1년만에 눈을 뜬 소년은 제 몸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어찌할 줄 몰랐음. 그도 그럴게 90세가 다 된 몸과 완전히 증발해버린 가슴께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찌 이런 어린 아해의 몸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마지막 순간에 큰 꺠달음을 얻고 반로환동을 할 리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자신을 끌어안고 눈을 떠서 다행이라며 울고 있는 이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민들이었으니까. 어찌되었건 처음 보는 이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상황을 파악하고자 한 소년...... 청문은-
아직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나. 그래도 눈을 떠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소리를 듣고, 조금 머리가 아픈 아이 취급을 당하게 되었음. 며칠간 쉬면서 상황을 보아하니 마교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중심엔 화산이 있었으며, 매화검존이 천마의 목을 쳤다는 것만이 확실해졌음. 다만 이상한 것은 청문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과 그 상황이 괴리가 있었다는 것인데,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이 '구파일방의 화산'이 아니라 '천우맹'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맹의 '화산'이라는 점이었음. 청문이 눈을 감기 전까지 화산은 구파일방에서 2, 3위를 다투는 거대 문파였는데 그 역사성을 무시하고 천우맹으로서 화산이 칭송된다고? 거기다 현 장문인 백천진인은 말 그대로 백자배였음. 청문이 아는 백자배는 이미 장로직에서 물러나 태상장로로서 있던 윗배분의 백자배였음. 애초에 당시 강호는 새 제자들을 받을만한 시기가 아니었기에 청문이 기억하는 마지막 제자는 현자배였음. 백자배는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장문인으로서 백자배라면 12대 제자일 것인데 12대 백자배에는 백천이라는 도호가 없었음. 아무리 십만대산에 오르기 전에 전사했다지만 암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고, 새외라 배척당했던 북해빙궁과 남만야수궁까지 참전했었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마교전쟁이 아님을 확신한 청문은 결국 미친척하고 주변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봄. 거기서 얻어낸 사실은...... 청문이 말하는 마교전쟁은 1차 마교전쟁이라 부르는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의 사건이라는 것. 사람들은 청문이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니, 머리를 다쳐 그 기록과 지금의 상황을 혼동한다 생각했음. 그러나 청문은 경악을 금치 못했음. 그러니까 자신은 결국 100년 전에 죽었던 것이 맞고, 당시 십만대산을 올랐던 이들 중 그 누구도......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 믿었던 청명마저도 천마의 목을 베고 죽었으며, 그 때문에 외면당한 화산은 몰락의 길을 걸었었다고? 원시천존이 도왔는지, 이번에 천마의 목을 베어낸 2대 매화검존이 화산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화산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은 채로 소멸할 문파였으며, 압도적인 무력과 심계로 중원을 미리 통합했기에 오히려 1차 정마대전보다 피해가 더 적은 채로 전쟁을 마무리지었다는......
청문은 끝내 전쟁 마지막에 제대로 수습조차 되지 못한 두 번쨰 매화검존의 이름이 청명이라는 것을 듣고도 자신이 아는 청명과 동일인물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음. 애초에 청문이 아는 청명은 무력과 심계가 뛰어날지는 몰라도 한때 '검협'이라는 별호를 사용할 정도로 의와 협이 뛰어나지는 않았으며, 타 문파와의 갈등에서 정치를 이용한다던가 굳이 사파의 통합을 내버려두어 정파간의 결속을 다진다던가 자신이 만든 맹에 사파(녹림)까지 포용할 정도로 아량이 넓지는 않았기 떄문임. 정확히는 그 모든 것을 가르치고자 했으나 청명이 귀를 막고 억지로 무시했던 그런 것들이었기에. 그래서 그저 이번에 죽게 된, 자신의 아주 머나먼 후손에게 청문은 그저 마음 속으로 예를 차렸을 뿐이었음. 화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어린 아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서. 어디까지나 지금의 청명이, 자신이 아는 청명이 아님을 믿었기 떄문에.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음을 알게 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음. 그 이유인 즉-
매화검존이라면 만나본 적 있지 않느냐.
...... 네?
아직 전쟁이 터지기 전에 말이다. 우리 상단과 거래를 늘리고 싶다면서 찾아왔을 떄 마당을 정리하던 너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뭐, 아직 화산'신룡'이라는 별호를 쓰던 떄이긴 했었지.
현재 몸의 부모되는 이가 말하기를, 당시 청명은 청문을 보곤 굉장히 놀란 듯 하다가 몇 마디 나누더니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고 함. 청문은 당시 강호에서 유명한 화산신룡에게 잠시 호기심이 생겨 뒤를 따라다니다가 다른 상단이나 흑도무리한테 보여주는 성질머리에 학을 뗸 나머지, 헤어지기 전 화산에 입문할 생각 없느냐 넌지시 하는 제안을 기겁하며 거부했다는 이야기였음. 그런 일도 기억나지 않는구나-라며 혹여나 도움이 될까 이것저것 세세한 뒷이야기를 늘어놓는 부모의 말은 더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음. 다른 이들에게 보여준 성격, 화산의 무학에 대한 이해와 화산 자체에 대한 헌신과 애착....... 그 모든 것이 지금껏 청문이 억지와 논리로 무시했던 단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제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화산을 위해 제 영혼까지 갈아넣은 사제. 외모도 무학도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한 눈에 저를 알아보고도 결국 저에게 거부당했을 청명의 표정이, 본 기억이 없음에도 뇌리에 생생하게 그려졌음. 그 아이라면 자신이 전장에 나가지 않음에 안도하면서도....... 결국 홀로 남아버린 그 외로움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서러움을 억지로 참아냈을 터이니. 그런 외로움을, 다시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건만......
그리하여 청문은 이내 시신의 수습이 시작된 십만대산으로 무작정 달려가게 됨
3.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인들의 밥이라도 해주겠다며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양민들이 상당했기에, 그들에게 끼어 목적지에 도착한 청문은 자신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참한 광경에 숨을 삼켰음. 온갖 문파의 무복이 섞여 있었고, 그 안에는 마인들이 또다시 섞여 있을 터이고....... 살아있는 이들은 그 사이에서 마교가 아닌 이들을 골라내고, 물을 부어 핏물을 닦아 문양을 확인하고, 그 문파 사람을 불러 신원을 또 확인하고...... 그 사이에는 분명 화산의 아해들도 있었음. 엎어져 죽은 시신을 뒤집자마자 '곽회야!!'하는 소리가 들려왔음. 아, 아직 저 아이는 도호조차 받지 못한 어린 이었구나.
청문은 그들을 도와 수습하는데 힘썼음. 이건 당가, 저쪽은 소림이고...... 아, 또 매화가 있구나. 남궁..... 아니, 해남인가? 그 와중에, 청문은 유독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화산의 아해들을 발견함.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의견을 묻는 것으로 보아서 직급이 좀 있는 사람 같은데, 그렇다 하기엔 얼굴이 너무나 젊었음. 그들은 직접 시신을 뒤져가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음. 그들은 대체 무얼 찾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무렵-
키익!
제 발치에서 우는 담비에 놀라 청문은 뒷걸음질쳤음. 담비, 백아는 청문의 발이 있던 곳을 재빠르게 파헤치더니 곧 희게 빛나는 쇳조각을 입에 물고 쪼르르 달려가버렸음. 그걸 받아든 화산의 제자, 백천은 흰 천으로 그걸 꼼꼼하게 닦더니 바닥에 펼쳐둔 장포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고....... 장포 위에는 온갖 물건들이 두서없이 흐뜨러져 있었음. 검이었을 것인 쇳조각 여러 개, 피로 검게 얼룩진 녹색 머리끈, 다 헤져버렸으나 문양만은 선명한 매화 도복 일부...... 아, 청명이구나.
지나친 내력 고갈, 마화로 인한 내상, 여기저기 뒤틀린 외상에 버티지 못한 정신이 불러온 주화입마...... 마교에게 시신이 훼손당하기 이전부터 조금씩 무너져내린 청명의 몸은 그 어느 흔적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십만대산에 스며들었음. 그걸 제 눈 앞에서 본 제자들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수습하고자 바닥을 헤집고 있었으니, 이내 청문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야 말았음.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 못난 사형은 너를 화산에서 잠재우지 못하고 있으니, 부디 너는 나를 용서치 말거라.
그로부터 일주일. 품에 쏙 들어갈만한 보따리 하나만이 겨우 수습된 청명은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휘하던 백천의 손에 들려 화산으로 돌아갔음. 청문은...... 그를 따라가지 않았음. 자격이 없는데, 청명이는 이 산에서 두 번이나 잠들었는데 화산에 돌아간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싶어서. 이미 들쑤실대로 뒤져낸 산이었지만 청문은 모든 이가 떠난 다음에야 지팡이 하나를 들고 다시금 수색을 시작했음. 혹시라도 남아있는 것이 있을까봐. 지금 시대의 청명이 어찌 생긴 이인지도 모르건만 그럼에도 그리 해야한다 생각한 청문의 지팡이 끝에....... 한 해골이 끌려왔음.
왼팔이 없고 여기저기 꺠져 볼품없는 해골. 그 소속을 알만한 무엇도 없는 낡은 해골이었으나, 청문은 알아볼 수밖에 없었음.
....... 청명아.
100년 전 그 눈조차 감지 못하고, 제 사형제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나서야 스러졌을 자신의 사제임을.
4. 이 미련한 어린 사형아
청문이 매화검존의 유해를 수습할 무렵, 비슷한 경로로 기억을 되찾은 청진은 허탈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음. 화산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있었고 막 전쟁이 끝났을 떄라 잔뜩 경계받긴 했지만 어찌어찌 검존을 존경한다느니 하는 변명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청진은 항상 사형과 앉았던 자리에 있는 무덤이 제 사형의 무덤임을 의심치 않았음. 그러나 그 무덤의 주인은 13대 제자 청진진인, 본인의 것이라 고하는 운암의 말에 청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음. 검존, 100년 전의 매화검존 청명의 무덤은 어디 있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없었음. 100년 전의 매화검존은 수습되지 못했으며, 이번 대의 매화검존 또한 무엇하나 건지지 못하여 무덤이 없을 것이란 말을, 운암은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음.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대답을 읽어낸 청진은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며 읊조렸음
그래요, 사형. 언제나 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네요. 끝까지 저를 찾아주시다니. 하지만 사형, 저는 모두가 묻힌 곳에 같이 묻혀있고 싶었습니다. 사형조차 돌아오지 못한 화산에, 홀로 덩그러니 신선놀음따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구요, 이 미련한 사형아. ....... 제가 사형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으면, 그냥 두들겨 패서라도 기억하게 해주지 그러셨어요.
5. 미안하오, 형님
전쟁 초반에 의식불명의 중태를 입고 전쟁 후에야 깨어난 당가의 후기지수, 당보는 한창 장례가 치러지는 그 안에서 멍하게 청명을 대신하는 잔해들을 바라보았음. 당가주, 당군악이 말하기로 독에만 매진했던 어리석은 당보가 당하기 직전에 매화검존이 몸을 던져 구해주었으니, 응당 인간이라면 예를 갖춰야만 한다고. 당보는...... 억지로 구역질을 참아야만 했음. 전생의 자신이 누누이 말했던 그것. 독 따위에 의존하다가 진짜 고수 만나면 그냥 훅 죽어버리는 거라고. 그 멍청한 짓거리를 하다가, 다시 청명을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음
청명의 뒷자리는 언제나 당보의 것이었음. 물론 당보 또한 쫒아가기 벅차긴 했으나, 청명은 일단 제 눈에 보이면 조금이나마 발걸음을 늦춰주는 정이 있었으니 당보는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었음.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어졌으니, 당보는 그저 깊게 절한 채 일어나지 못했음. 저와의 약속을 끝끝내 지켜준, 그러나 결국 죽어버려 다시 만나지 못할 형님에게 사죄할 방법따윈 알 수 없었음.
그렇게 당보는 장례 떄문에 객을 받는 마지막 날까지 그저 사당에 앉아 검게 변해버린 머리끈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음
6. 이게 맞는 것이니까요
청문, 청진, 당보가 깨어난 것은 원시천존이 준비해둔 안배였음. 만약 청명이 조금만 더 오래 견딜 수 있었더라면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선물. 청명의 두 번째 삶에서 스쳐 지나가는 동안 청명은 그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청명을 알지 못했고, 결국 다시금 생과 사의 경계로 나뉜 다음에야 기억을 되찾은 그들은 이내 후회 속에서 청명의 흔적을 찾고 있었음.
기회가 다시 필요하느냐?
청명은 고개를 저었음.
이 모든 것이 순리이지요. 제가 13대 제자 청명으로서 깨어나지 못했더라면 끝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인 것을, 조금 어긋났다 하여 아쉬워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아닐런지요.
그리 말한 청명은 진즉 올랐어야 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음.
저들이 그리워해야 하는 것은 13대 매화검존 청명이지, 23대 청명이 아니니 그저 잘 된 일이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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