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터 바꿨다!!
1. 도와주세요, 장문인
기어이 홀로 십만대산을 올라 천마를 베고야 만 매화검존. 뒤늦게나마 화산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을 땐 머리가 없음에도 가부좌를 풀지 않은 시체 옆에 스러진, 자칫 잘못하면 그저 다른 마교도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곤죽이 된 모습이었음. 손에 쥐고 있는, 끝까지 날이 무뎌지지 않은 매화검이 아니었다면 그가 화산의 제자임을 몰랐을 정도로.
어찌저찌 뒷수습은 당보를 필두로 한 당가가 맡고, 화산은 청명이의 시신을 가지고 화산으로 귀환함. 오랫동안 비워둔 탓에 먼지투성이인 전각을 닦고, 무너진 것을 수리하고......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도가사상에 따라 적당한 목관에 작은 봉분 하나 세우는 것이 도사로서의 도리임을 알지만서도 차마 청명이를 그리 보낼 수 없어 손만 덜덜 떠는 청자배들. 그나마 나무에 옻을 두텁게 칠하고 기름까지 먹이고 나서야 겨우겨우 놓아줄 수 있게 되었고......
살점이 죄다 뭉개져서 알아볼 수도 없었던 얼굴을 메워가며 닦고, 반으로 찢어져버린 매화문양과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지저분한 도복을 벗겨내는데, 오른쪽 소매에 묶인 매듭을 풀던 제자 하나가 울먹이며 청문을 찾음.
자, 장문인.... 도와주세요, 장문인.....
사제의 시체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수는 없었던 청문은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억지로 눌러가며 제자가 부른 곳으로 감. 그리고 기어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림. 청명이의 오른손엔.... 여전히 매화검이 들려있었기에
아무리 해도 장로님이 검을 놓지 않으십니다.
.......
손가락 하나조차, 검에서 떨어지려하지 않으십니다.......
화산의 제자들이 배우는 정석적인 형태가 아닌, 역수로 쥔 검. 마지막으로 천마의 목을 칠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검로가 눈에 그려져 청문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맘. 전쟁이 날 수도 있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하신검을 풀었어야 했나? 아니면 정예군을 꾸리기 전 사제의 의견을 받아줬어야 했을까? 어찌 죽은 뒤에도 그리 쉬지를 못하고-
뒤늦게 도착한 당보가 그 모습을 보더니 조용히 물어봄. 신경 몇 군데를 건드리면 손을 펴게 할 수 있는데, 도와드릴까요? 그러나 청문은 고개를 저음. 고작 침 몇개라지만 이보다 청명을 더 상처입히고 싶지는 않아서. 대신 굳게 쥔 손을 가만히 쓸며 말함
청명아, 사제. 전쟁이 끝났단다. 네 덕분에, 네가 천마를 베어낸 덕분에 중원에 평화가 찾아왔단다. 그러니 이제 편히 쉬어도 된단다. 검은 잠깐 내려놓고, 저 어디께 네 원하는 곳에 소박한 정자 하나 지어줄터이니, 술이나 마시고 경치나 구경하며 신선놀음하며...... 그만 쉬거라, 청명아.
참 놀랍게도, 그리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요지부동이던 검존의 오른손에서 힘이 빠짐. 스르륵, 댕그랑. 매화검이 바닥을 구르며 부러져버림. 부러질지언정 제 쓸모를 다하기 위해 끝까지 예리함을 잃지 않는 것이 꼭 제 주인을 닮은 꼴이었음. 기어이 그 모습을 보고서야 진정으로 청명이 떠났음을 느낀 화산 제자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오열함
화산의 신물은 이제 자하신검에서 청명의 매화검으로 바뀌게 되었음. 아무리 좋은 재료와 우수한 장인이 만든 검이라한들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한 검보단 제 역할을 다한 검이 어울리다는 의미에서였음. 화산 제자들의 기억을 더듬어 청명이 자주 숨어있던 골짜기에 딱 사람 하나 몸을 뉘일만한, 그러나 백 년이 지나도 거뜬하도록 튼튼하게 지은 전각 하나를 두고 그 옆에 매화검존의 봉분을 만들었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술과 다과 한 접시를 가져다두기를 어언 백년
매화검존을 직접 보지 못했던 배분만이 남았을 시절부터 전해지는 화산의 전설. 매화검존의 사당에는 매일 술과 안줏거리를 가져다두는데, 다음날 가보면 항상 빈 병과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만이 남아있더라고
2. 야, 당보야. 심부름 좀 해라
제가 무슨 형님 부하입니까? 하라는 대로 왔다갔다-
싫냐?
좋다는 뜻이지요. 에헤이, 진짜라니까!!
그러면서 무슨 주머니 하나를 툭 던지는 청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낸 당보는 생각보다 묵직한 느낌에 열어보려다가 청명이의 시선에 관둠. 물어봐도 답 안해주겠지? 청명이는 술병을 입에 가져다대면서 말함. 우리 장문인에게 가져다줘라. 에엥? 거 화산에 오를거면 본인이 직접 가져다주면 될 것이지 굳이 왜 나를?? 아 가라면 가라고!!
어쨌든 형님 말대로 사부작사부작 걸어서 단숨에 화산을 오른 당보. 어쩐지 평소보다 더 높고 오르기 힘들다는 기분은 들었지만, 대문이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었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이들은 갑작스런 암존의 등장에 당황한듯 보였으나 이내 침착하게 물어봄. 암존께선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아, 형님이 장문인께 이걸 꼭 좀 전달하라 하지 뭐요. 내 참, 천하의 암존을 고작 표사로 부려먹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으려냐 궁시렁궁시렁-
그러나 이내 제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당보 또한 뭔가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챔. 장문인, 청문이 헐레벌떡 튀어나와 주머니를 받아들고 열어보니 그 안엔 청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들어 있었는데, 뒤따라온 청진이 그걸 보곤 어쩌자고 이랬냐며 주저앉아버림. 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러냐고 여러번 여쭙고 나서야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암존께선 도인이 아니시지요
그렇습니다만
........ 이건 지상에서 공덕을 쌓고 도를 쫒은 자들이 선계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패입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
화산을 오르는 데,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으셨지요?
그야......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좀 더 가팔랐던 것 같기도..... 하고....... 어라?
순간 머릿속으로 휘몰아치는 기억들. 전쟁이 터지고, 가솔들이 죽어가고, 후회하고, 형님께 그런 유언을- 남겼는데, 여긴 어디지 그럼?
청명이가...... 암존을 자기 대신 선계로 보낸겁니다.......
......... 그럼, 도사형님은-
서둘러 돌아가려는데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화산에서 내려갈 수 없는 당보. 청문은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말함
선계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친우에게 양보하고서까지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분명 쉬운 길은 아니리라 짐작할 수밖엔.......
당보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본래라면 기억이 지워지고 지상에서 환생했어야 하나 딱 전쟁이 시작하던 무렵까지의 기억만 지워진 채 똑같이 죽어버린 청명이를 만나 속아서 선계로 올라버리는 그런 이야기가 보고 싶었음
3. 숙부라 부르거라 (검존스승 신룡제자 썰)
니가 왜 걔 숙부야
그야 제가 형님 아우니까 그렇죠. 그렇다고 사문은 다르니 사숙이라 부를 수도 없고, 숙부가 제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결국 검존의 살기어린 시선과 당보의 능청 사이에서 고민하다 끝까지 숙부라 불러보지도 못하고 당보를 떠나보낸 신룡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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