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그냥 뻘하게 당청보고싶다
* 짧
* 청명이와 화산파의 기묘한 이야기 기반
둘이 오붓하게 사파척살 데이트(?)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하룻밤 머물 객잔을 찾는데 마침 그 근처에서 큰 행사가 있어 공실이 없었음. 청명이야 그냥 잔디 깔고 밤하늘 천장삼아 보내면 된다고 하는데, 곱게 자란 도련님(??) 당보는 그런거 용납 못함. 특히 저만 있으면 모를까 일단은 정인인 청명이 같이 있는데 어찌 찬 바닥에서!! 그래서 웃돈 얹어보려고도 하고 회유하려고도 해봤는데 도저히 방을 구할 수 없었음. 그러던 중 문득 고강한 무인의 눈에 들어온 객잔 3층의 어느 구석진 방.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고 불도 꺼져있는데다 자세히 보니 창이 못질되어 완전히 닫힌 곳이었음. 당보는 그 방이라도 내어달라 하는데 객잔 주인은 한참 망설이더니 이내 돈은 사양하고 객실 열쇠를 내줌. 두 사람의 무공이 고강해보여 어쩔 수 없이 준다는 말과 함께.
객실은 오래동안 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음. 창문도 열리지 않는다 뿐이지 창호지는 깨끗했고 나무틀도 갈라짐 없이 멀끔했음. 다만 창의 방향이 잘못되었는지 어쨌는지 한기가 든다는 생각이 들었음. 이미 한서불침의 경지에 오른 암존이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왜 객잔 주인이 내주지 않으려 했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청명이 투덜대며 말함
쯧. 어찌 방을 잡아도 이런 곳을 잡냐, 당보야.
아 왜요 또 뭐! 이게 다 형님 생각해서 바람은 맞지 말자고 하는 일인데, 이 정인의 마음도 몰라주오?
....... 씁, 아니다.
힝힝 맨날 이러지. 그래도 정인인데 나만 형님 생각하고 형님은 타박이나 주고! 나 완전 삐졌으니 말 걸지 마쇼! 휑 돌아서 침대 한구석을 차지해버린 당보. 이번 객잔 잡을 떄도 저 혼자 발품팔고 정작 청명이는 저들이 바닥에 드러눕든 말든 신경도 안쓰고 있었음. 언제나와 같은 날인데도 갑자기 서러움이 폭발한 당보는 어디 한번 추워봐라! 라는 심보로 이불을 끌어안고 잠이 듦.
그리고 새벽. 당보는 70 평생 살면서 단 한번도 걸려본 적 없던 가위에 눌림. 분명 이불 끌어안고 웅크린 채 옆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몸은 정자세로 천장을 보고 있었고 눈은 이상하게 감기질 않았음. 팔은 제 것이 아닌마냥 뻣뻣하게 굳은 채 있었는데, 자기 전보다 더한 한기가 몸을 침범하는게 느껴졌음. 그리고..... 분명 닫혀 있었던 창문이, 기익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림. 무언가가 벽을 타고 올라와 창틈을 통해 몸을 구겨넣고, 그렇게 창문 바로 아래쪽에서 자고 있던 당보의 위로 긴 달그림자가 지는데..... 기어이 당보와 눈이 마주치고 맘.
'그것'은 당보를 보자마자 웃는지 우는지 모를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앙상한 팔을 흔들고 환호했음. 아. 뭔진 모르지만 저게 지금 나를 노리고 있구나. 강호에서 몇십년 굴러먹은 직감이 그리 외쳤지만, 정작 같이 굴렀던 몸뚱이는 손끝만 살짝 움직여질 뿐 저를 도울 생각을 안함. 그렇게 난 망했소 형님- 하고 저것이 어찌 나올지를 보고 있는 찰나에-
이새끼가 감히 내 정인을 노려?
빠악! 아아아주 익숙한 구타와 폭력의 소리. 순간 몸이 풀려서 벌떡 일어난 당보는 이내 보고야 맘. 저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고 어떻게든 피해보려던 그것과 괜히 매화검존이 아니라는 듯 아픈 곳만 골라서 검집으로 패고 있는 청명을.
니가 죽은지 오래돼서 현세 소식에 느린 모양이다? 사천의 암존이 정인 생겼단 소리를 못들었으니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이 지랄을 하지??
저..... 도사형님?
지금까지 그렇게 몇 명이나 잡아먹었냐, 엉?
퍼억! 빠악! 신명나는 구타소리가 겨우 멎을 때 즈음에 '그것'은 반쯤 곤죽이 되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음. 청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집어들고 열린 창문 바깥으로 내던져버림. 심지어 씩씩대며 내려가 주방에서 소금을 가져다 뿌리기까지 한 뒤에야 분이 풀렸는지 창문을 닫고 제 자리로 돌아옴. 당보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청명과 함께 이불을 덮고 있었고, 뇌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는지 금방 잠에 빠져듦.
다음날, 객잔 주인에게 따져 물었더니 면목이 없는지 이 일을 설명해줌. 원래 그 객실과 창으로 보이는 맞은편 객실에 각각 세들어 살던 두 남녀가 정을 통했는데, 바로 옆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객잔 주인을 깨우기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창을 통해 만났다고 함. 그런데 언제나 이 객잔에 머물던 남자가 여인네 객잔으로 넘어갔는데, 하루는 실수하여 발을 접지르는 바람에 3층에서 떨어질 뻔 했음.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남자는 항상 저만 위험을 무릎쓰고 만나러 오는 것에 불만을 표했고, 크게 화를 낸 뒤 돌아감. 그 다음날, 여자는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덜덜 떨면서 창을 건너왔는데, 화가 난 남자가 창문을 잠궈둔 채 잠들어버렸고 여자는 결국 창을 열지 못하고 추락해 죽었다는 이야기였음. 그 날 이후로 저 방에 남자 손님이 묵으면 대부분 창 밖으로 추락했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도 반쯤 정신이 나가버리는 일이 발생해 굳게 창을 봉하고 손님을 받지 않았음. 정 받아야 한다면 여자 손님만 받던 방이었는데, 청명과 당보의 모습을 보고 고강한 강호인이라 생각한 주인이 '그래도 3층에서 떨어져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래도 양심에 찔려 돈은 받지 않고 방을 내어준 것이었음.
청명은 일단 흠씬 혼쭐내서 쫒아내긴 했으니 이젠 일 없을거라 하지만, 혹여나 불안하다면 매화검 하나 구해서 창문 근처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라고 함. 생각이 있으면 저를 패던 물건이 버티고 있는데 들어올 리 없다면서. 객잔 주인은 연신 감사를 표하며 술을 한가득 싸서 선물로 주었고, 둘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떠남
당보는 청명의 눈치를 설설 보았음. 저가 어제 별 것 아닌 일로 픽 돌아누운 것도 그닥 좋지 않은 기운이 서려 있어 그렇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래도 화를 낸 것은 사실이니까. 사과를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청명이 저를 정인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는 말을 했음에도 청명은 분명 '내 정인에게 손을 댄다' 라며 화를 내주었으니...... 다만 대체 어찌 말을 떼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청명이 먼저 입을 엶
답지않게 뭘 고민하고 있냐
....... 에휴. 그럼 그렇지. 형님은 형님이죠. 어제 화내서 미안하오.
됐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좀 심했지.
........
그 귀신 말이다. 보통 일행이 객실에 머물 때는 잘 나타나지 않는데, 유독 정인이 나올 때는 더 심하게 군다고 하더라.
왜일까요?
저는 그러다 죽었는데, 저들끼리 행복해 보이는게 싫었나보지.
그리 말하며 청명은 뒤를 돌아 피식 웃어보임
그게 보기에도 우리가 썩 행복해보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