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화산귀환] 매운맛 나오기 전에 빨리 청문귀환 썰

이드(Reilu_L) 2021. 10. 21. 22:46

* 본격적 매운맛 들어가면 썰 안쓰게 될 수도 있다

* 그러니까 기억나는 대로만 씀

 

 

 

 

 

 

 

 정마전쟁의 유일한 생존자 매화검존. 천마를 죽인 죗값을 묻겠답시고 화산으로 쳐들어온 마교놈들마저 도륙내고, 화산으로 귀환. 이후 비급서를 정리하고 화산을 물어뜯으려는 구파들을 침묵시키고, 당보와의 약속을 지킨 이후..... 실종.

 

 그리고 100년 후 환생한 청문. 화산은 소림과 더불어 구파 중 1, 2위를 다투는 대문파였고, 특히나 세간의 평은 그 소림보다 더 드높았음. 여전히 구파인 이유는...... 당장에 남은게 청명이 혼자밖에 없는데 구파까지 나가버리면 화산을 공격하지 않을 명분마저 없어지니까 눈물 머금고 안한거임. 청문은 15살 생일에 갑자기 기억을 되찾았고, 서둘러 100년 전 이야기를 수집하는데 나오는 이야기는 13대 제자들을 필두로 한 화산은 천마를 벤 매화검존 단 하나만이 하산하였고, 그렇게 화산은 맥을 이어갔다는 것. 청명이가 해냈구나! 심지어 화산 어린 제자들까지 챙겨주다니, 이번에야 말로 칭찬해주마! 청명이는 강했으니까 어쩌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짐. 그러나 그 뒤에 나온 말은...... 화산의 어린 제자가 새로이 장문인이 된 날, 화산을 내려간 매화검존은 그 길로 실종되었다는 이야기였음

 

 평생 화산에 눌러박혀 살고 싶다던 애가 실종? 의문을 가진 청문은 마침 23대 청자배를 받을 시기가 왔다는 소식에 화산으로 가 입문함. 아쉽게도 거지 시절 주워온 윤종이 먼저 입문했기에 대제자 자리는 놓쳤지만, 아이답지 않은 현기와 사람을 아우르는 성정, 그리고 의외로 높은 무학의 이해도(자하신공까지 익히긴 했으니까) 덕분에 청자배는 물론 화산 전체에서 기대받는 유망주 중 하나가 됨. 청문은 화산 내에서 3대제자로 살아가며 청명이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더더욱 이상한 점을 발견함

 

 하나는 자하신공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 이건 당연한게, 100년 전 자하신공을 청문이 전수하기 전에 죽었고, 유일하게 알고 있던 청진은 그 전에 실종됐으니까. 청명이는 시간관계상 익히지 못했고. 그 다음으로 매화검존의 유진이 전혀 남아있질 않음. 청문은 그래도 자하신검이라도 남겼지, 청명이는 그 이후로 화산에서 꽤 오래 살았는데(이대제자 애들이 커서 장문인 될 때까지 살았으니까) 남은게 단 하나도 없음. 오죽하면 청진이 애용하던 매화꽃 그려진 다기가 매화검존 유진이랍시고 모셔지고 있기까지 함

 

 아무튼간에 화산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청문은, 홀로 남아버린 장문인으로서 사제들과 제자들을 화산으로 돌려보내주고 싶어함. 듣자하니 십만대산은 전쟁이 끝나고도 몇 십년이나 마기가 남아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고 하고, 그 이후에는 당연히 수습하려 해도 수습할 물건이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청문은 그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 그렇게 화산의 신임을 얻어 단독행동권을 가지고 여기저기서 제자들의 흔적을 찾아다님

 

 다 헤진 옷감, 부러진 칼조각, 누군가가 자랑했던 여동생이 만들어준 목걸이, 머리끈, 검술...... 작은 흔적이라도 화산으로 가져와 깊이 절을 하고, 수고했다며 덕담을 하고, 물건을 태워서 넋을 기리고..... 누군가 물어보면 망설이지 않고 답함. 14대 제자 명서의 물건입니다, 13대 제자 청주의 물건입니다...... 그러다보니 다들 청문이 100년 전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알면서도 언젠가 스스로 말해주기를 기다림.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화산의 제자를 사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하신공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렇게 청진의 유해를 찾은...... 청문이 위대한 장문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청진과 청명 중 한 명을 되찾았고, 그날 혈사에 참가한 대부분의 제자들의 흔적을 찾았으나 살아남았다던 매화검존의 흔적만은 찾을 수 없었음. 청문은 점점 우울해져 감. 저 혼자만 살아남은 못된 장문인인데, 전쟁에서 제일 큰 공을 세우고도 제일 많이 고생한 사제에게 고생했단 한마디 해주지 못하는 사람임에 자책하던 그는, 결국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함. 그리고 현 장문인, 현종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해 말하고 매화검존에 대한 단서를 찾고자 함

 

 현종은 처음엔 놀랐지만 청문이 보여준 것들, 그리고 100년 전 유산에 그리 집착하던 모습을 납득하고서 포권을 하며 인사함. 화산의 후예가 위대하신 선조님을 뵙습니다. 하지만 현종에게도 큰 단서랄건 없었음. 현종은 청문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현자배와 5배분 차이가 나는, 까마득한 후손이었고, 매화검존을 직접 본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계속 기억을 더듬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고민하는데, 문득 제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오름. 그 스승의 스승이라는, 매화검존을 직접 뵈었다는 사람이 실종된 매화검존에 대해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었노라고. 가끔 술 한병 들고 화산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며칠 후 불쑥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그게 며칠일 때도 있었고 몇 시진일 때도 있었지만, 항상 어디에 다녀오셨냐 물으면 자기가 갈 곳이 화산 말고 어디에 있겠느냐며 오히려 화를 내셨다는.....

 

 청문은 인사를 하고 나와 홀로 생각에 잠김. 아마 청명이는..... 사제들을 데려오고 싶었겠지. 정이 많은, 오히려 자신보다 화산을 더 사랑하던 사제는 청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임. 언제라도 십만대산에 다시 뛰쳐들어가서, 부패하는 시체를 끌어안고 화산으로 돌아가자며 애타게 부르짖고 싶었을 것임. 하지만 청명이는 그러지 못했음. 유일한 생존자로서 청명이는 화산을 되살려야만 했고, 언제라도 틈을 보이길 기다리는 저 가증스러운 구파들 앞에서 화산을 비울 수는 없었을테니까. 후손들이 청진의 물건을 청명이의 물건이라 착각한 이유도 여기 있었음. 청진은 유일하게 '생사불명'인 제자였고, 청명이는 그가 죽었을 가능성이 10할에 가까운 것을 알면서도 유일하게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청진을 생각하며, 그를 찾으러 가지 못하는 못난 자신을 자책하며 청진의 방을 자주 드나들었을 것임.

 

 청명이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말 그대로 청명이는 화산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임. 구파에서 회의 소집을 해도 아이고 애들이 아직 어려서, 내가 아직 천마 목 따고 입은 부상이 다 안나아서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대충 빠졌겠지. 그러면서 술 한잔 챙겨 나갔다는건, 아마 착잡한 속을 달래기 위해서일 것이고, 제일 좋은건 높은 봉우리에 올라 탁 트인 경치를 보며 마시는 것이겠지만..... 옛날 화산과 다르게 절벽타는걸 일상으로 삼는 이유가 그 매화검존이 시킨 효율 좋은 수련이라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문은 가능성을 지움. 저렇게 제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에 앉아 약점을 드러낼 아이는 아니니까. 그러다가 문득 청명이가 청진의 방을 자주 드나들었을거란 추측에 대해 갑자기 의문을 품게 됨. 청명이는 청진에게 큰 죄책감과 동시에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을거고, 청진의 방을 드나드는 것은 어쩌면 그 모순된 심정을 헤집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인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화산. 책임질 것들이 있어 함부로 하지 못하는 목숨. 저만 기다릴거라 약조한 청진을 찾으러 가지도 못하면서 살아있을거란 막연한 희망 하나만 붙들고 지내는 삶. 술로 달래고 싶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신세. 아마 청명이는 화산을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름. 자신이 지키지 못한 자들의 빈자리가 느껴지니까, 너무나 삭막해진 화산을 두 눈으로 담아야만 하니까. 그럼에도 화산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것임. 화산은 청명이의 전부였고, 이 곳을 떠나면 정말 청명이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테니까. 이런 사소한 흔적 하나라도 되새기면서 죽어간 자들을 기리는 것이 청명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을테니까. 청문은 저도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봄. 그러니까 청명이는 화산을 떠나고 싶되 떠나기 싫어서, 화산이지만 화산같지 않은 곳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화산의 안에 있지만, 잠시나마 화산을 잊고서 멍하니 술이나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곳. 어디에나 있는 매화도 쉬이 보이질 않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으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며칠 쉴 수 있는-

 

 예를 들면, 단장애라던가

 

 청문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단장애로 향함. 어디에나 매화를 쉽게 볼 수 있는 다른 곳과 달리 삭막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너무나 가팔라 화산의 제자들에게 금지당한 곳. 하지만 금지고 자시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던 청명이가 안가봤을 리 없는 장소. 혹여 거기에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청문은 단장애를 수색했고, 그 결과..... 청명이가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동굴을 발견함

 

 안에는 별 물건이 없었음. 청명이가 쓰다가 부러진 것 같은 매화검 하나, 빈 술병과 그걸 묶었던 노끈 몇 개, 그리고..... 통증을 억누르지만 너무 독해서 잘 쓰지 않는 말린 약초 몇 묶음. 하나하나 살피던 청문은 이내 책자 하나를 발견함. 그건 청명이 화산으로 돌아온 뒤, 그들을 책임지면서 쓰기 시작한 일기.... 랄까 넋두리같은 것이었음

 

 화산으로 돌아왔지만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남지 않았다. 사실은 내가 그들을 사랑했음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음이 정확하다.

 

 현자배 아해들이 나를 어른 대접하려고 한다. 귀찮으니 가서 너희들 일이나 보라고 했더니,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길래 기초훈련이라도 하라고 타박을 했다.

 

 아해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기초만 다지고 있다. 일주일째다. 왜 그러는지 잊고 있었는데, 이걸 쓰려고 펼친 이후에야 알았다.

 

 상단 몇이 종남에게 돈을 받은 모양이다. 빌어처먹을 종남 개새끼들. 화산에는 미래가 없다는 둥 뭐라고 하길래 남아있는 팔로 그놈 강냉이를 털어줬다. 우직하게 화산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하는 자들이 있기에, 아직은 버틸 수 있을거다

 

 운남에서 서신을 보냈다. 내가 그놈들 은인이란다. 난 기억도 안나지만, 저들이 은인이라는데 뭐 어째. 덕분에 운남 특산품에 대한 독점 계약을 따냈다. 사천 당가 애들이 경유지로서 발을 들이밀고 싶어하길래, 당보 얼굴 봐서 딱 한 번 봐줬다.

 

 당보가 그리도 바꾸고 싶어했던 당가인데,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 당보도 저건 아니라고 했겠지. 무학에 뜻 있는 여식들이 생각 있으면 화산으로 보내라고 했더니 저들끼리 싸움이 났댄다. 근데 당가주가 다 눌렀다나. 죽은 당보 이름까지 대가면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가주직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 놈이 이런데선 당보를 닮았다.

 

 십만대산에서 여전히 핏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 그 강에 얼굴이라도 처박고 울 수 있었다면 편했을것을

 

 소림 떙중놈들이 별 같잖은 소리를 한다. 대머리 새끼들. 너희가 제일 피해 적은걸 개방놈들 통해서 사방 천지 퍼뜨려버렸다. 그리고 맨날 화산 '뒤에서' 싸웠음을 강조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화산이 무슨 희생을 했는지 깨닫겠지

 

 종남 새끼들이 소림이랑 손잡았나. 잠깐 화음에 내려갔더니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화산을 깎아내렸다.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우리에 비하면 저들이 더 실력이 좋기 떄문이란다. 내 사형제들의 죽음을 그딴 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간단하게 해결했다. 난 외팔이고, 다리를 절고 있으며, 내장 일부가 소실돼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종남이랑 소림 장로 10명 정도는 검 없이도 상대할 수 있으니까. 너희는 방금 스스로 그나마 봐줄만 했던 너네 사람들을 욕보였다는 것도 모르겠지. ...... 그래도 십만대산에 올랐던 너희 문파 애들은 좀 봐줄 만 했는데. 걔네가 죽었으니까 너네가 그리 거들먹거리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꼴이 퍽 우스웠지만, 이미 기절한 새끼들이 그걸 알겠어?

 

 종종 십만대산의 소식을 수집하고 있지만, 청진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른다. 그냥 가끔,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청진이 그 모지리가 발을 헛디뎌서 절벽 어디로 떨어졌는데, 머리를 크게 다쳐서 기억을 다 잃은거지. 그걸 어느 나무꾼이 발견해 치료해주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누군지 몰라서 대충 아무 마을이나 자리잡고 화산에 돌아오지 않는 그런 꿈. ...... 그렇게라도 살아있었으면 좋겠네

 

 현자배 애들이 드디어 매화를 피웠다. 오래도 걸린다, 병아리들

 

 십만대산에 놓고 온 것이 너무 많다. 마교놈들이 화산으로 향하는 것을 봐버렸기에, 수습할 시간조차 없었다. 서둘러 내려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자하신검마저 무슨 정신으로 주워서 왔는지 기억이 안난다. ..... 그냥, 내 검은 부러졌으니까 아무거나 집어왔겠지. 걔네는 아직도 십만대산에서 내려오지 못했는데, 난 왜 화산으로 돌아왔지?

 

 새 제자를 받아야만 했다. 전쟁 때문에 한참 미뤄졌던 것이니, 당연한 일이지. 운자배로 들어오기로 했던 몇몇 아해들은 입문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나도 그런 애들 필요 없다. 화산의 위세를 빌어 뭐라도 해보려는 싹수 노란 것들을 받을 이유도 없다. 장문인이 없어 내가 대리로 하고 있지만, 사실 일대제자들도 없으니 그냥 현자배 애들을 일대제자로 올리고, 운자배와 백자배를 한번에 뽑기로 하자. 돈도 있고, 무학도 남아있으니, 화산은 인재가 필요해

 

 구파에서 보낸 첩자 놈들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한 아해들이니, 그냥 엉덩이만 떄리고 돌려보냈다.

 

 빙궁에서 화산에 물건을 납품하고 싶다 전했다. 내 활약에 대해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라던가. 그래서 한철을 많이 달라고 했다. .... 검만 더 튼튼했어도 청선이는 죽지 않았을거다. 그러니까 내가 검에 내력 싣는거 연습 좀 더 하랬더니...... 의미 없다.

 

 이런 내용들. 청명이는 자책하면서도 어린 제자들의 성장에 기꺼워했고, 구파의 행태에 분노하면서도 절대 당하고만 있지 않았으며, 화산의 미래를 그리면서 과거의 흔적을 찾고 있었음. 그렇게 한장한장, 청명이가 화산을 살리기 위해 해온 노력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어나가던 청문은 점점 글자가 흔들리는 것을 발견함. 청명이는 화산에서 글을 배우고 글씨를 써온, 의외로 달필이라며 당보가 감탄할 정도의 명필가였음. 그런데 가끔 획이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질 않나, 쓰다가 틀려서 먹으로 지운 흔적이 있질 않나..... 그리고 결국 마지막 장을 보게 됨

 

 ...... 하기 싫다는 놈을 억지로 장문인 자리에 올렸다. 언제까지 늙은이 부려먹을거냐고 역정냈더니, 절을 하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더라. 자기들이 모자라서 나를 쉬지 못하게 하여 죄송하다고. 그래서 그거 발로 한번 굴렸다. 애면 애답게 굴 것이지.

 

 아무튼 내 인생도 이제야 끝이다. 당가놈들한테 부탁해서 얻어온 약재도 이제 내성이 생겼는지 안듣는다. 왼팔 없어진 것엔 익숙해졌지만 오른팔의 경련을 쉬이 잠재울 수가 없다. 다리는 시큰거리고, 내장은 음식을 거부해 식사를 언제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모든 상처에서 올라오는 마화가 뼈를 잠식하고 있으니, 고통에 잠자는 것마저 잊었다

 

 그래도 화산은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똘똘하고 상황파악 잘 하는 놈을 장문인에 앉히고, 그 다음으로 머리 좋은 애랑 수완 좋은 애들을 각각 장로직에 밀어넣었다. 그나마 현자배에서 강한 애는..... 내가 이르지 않아도 홀로 저 할 일을 찾아냈다. 순식간에 늘어난 제자들을 홀로 가르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은 놈이다.

 

 사형제들을..... 십만대산에서 죽어간 내 가족들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은 여전히 한이다. 나 홀로 화산에 돌아온 것은 죄악이며, 그런 이가 화산에서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은 호사다. 사실은 나도 그 곳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는마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화산을 지켜야 한다며 어설프게 검을 든 아해들을 봤을 때 버렸다. 이제야 좀 검수 티가 나는 지금이라면 모를까, 그 때 내가 죽었다면 아마 화산은 멸문했거나, 종남놈들에게 빚을 졌거나......

 

 눈치 빠른 아해들은..... 내가 다시 산문을 열고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잡지는 않는 것이, 내 고생을 알아준 모양이다. 그래. 이 누더기같은 몸뚱이 이끌고 종남 장로들 대가리 깨줘 소림 대머리들 머리에 매화문신 새겨줘 가르치고 비무해주고 회계장부 볼 줄도 모른다기에 그거 앉혀두고 하나하나 눈에 새겨줘...... 걔넨 내가 잠자는 것도 줄여가면서 일한다고 미안해하던 눈치던데, 그냥 아파서 못 잔김에 일한거다. 아무튼 그런 아해들 중 하나가 급하게 식당에 가더니만 술 한병을 손에 쥐어주었다. 화산에 남아있는 제일 좋은 술이라고. 아무 말 없이 받아서 나왔다

 

 난 불량품 검이었다. 날카롭기 짝이 없지만 검이 쓸모 없는 평화 속에선 제 주인을 괴롭혔고, 나보다 더 날카로운 검 앞에선 이가 나가버렸으며, 기어이 부러지는 바람에 지켜야 할 주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나는 장문인의 검으로서 장문인을 지키지 못했고, 화산의 검으로서 화산을 지키지 못했으며 오로지 그들의 뜻을 억지로나마 이루었을 뿐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무기라니, 끔찍하기 짝이 없으나 지금의 화산에서 나는 검이 아니라 믿음직한 장로님이어야만 했다. 내가 화산의 검으로서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후손들에게 떳떳한 선조가 있다는 사실 한 줄이 고작이다. 의와 협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고, 양민들 앞에 섰으며, 그 천마에게 대적하여 기어이 천하를 구해냈다는..... 100년 후에는 잊혀질법한 그런 사실

 

 장문사형에게 혼날 때는 그딴게 무슨 소용이냐 따져 물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안다. 내가 막 화산으로 돌아왔을 떄, 불타버린 전각을 치우고 그나마 꺠끗한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자던 그 시절에도 화산의 아해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당장 입을 옷이 없어 누더기인 상태로 상단에 내려갔을 떄 마주친 종남 놈들에게조차 고개를 빳빳이 들며 한 점 부끄러움 없다며 당당히 말하던 아해들이다. ...... 그것이 내가 지켜낸 것임을, 모든 것을 잃고 난 이후에, 죽기 직전에야 떠올리는 것이 난 정말 천상 말코임을 새삼 깨닫게 하더라

 

 화산에는 다시 매화가 피었고, 난 드디어 사형제들에게 갈 기회를 얻었다. 물론 내가 과연 선계에 오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는 문제지만..... 어쨌든 기회는 얻었으니 그걸로 됐다. 아해가 준 술은 아주 맛있었다. 당가의 약으로도 누르지 못한 고통이 잠시나마 잊힐 정도로.

 

 대화산파 13대 제자 매화검존 청명. 여기서 일지를 마친다.

 

 청명의 후유증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그 상황에서도 화산을 지탱했으며, 저의 죽음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청문.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겨우 진정하고 고민을 시작함. 이걸 화산으로 가지고 가야 하는가, 아니면 청명이가 숨기고 싶어했던대로 여기에 둔 채 돌아가야 하는가. 어쨌든 화산이었지만, 이 동굴은 너무 쓸쓸했음. 그러니까 물건을 남겨두고 가더라도, 적어도 그 유해라도 수습해야만 하는데...... 청명이 여기서 죽었음은 거의 확실해보이지만 시체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상황임. 그러던 청문의 눈에, 야명주가 눈에 들어옴. 정확히는 야명주 밑에 작게 접힌 종이가.

 

 혹시나 이 곳을 찾아낸 화산의 제자에게 남긴다. 마교새끼들의 마화는 아주 지독해서, 그 시체조차 형체를 남기지 않고 부스러지게 만든다. 심지어 그 천마가 직접 주입한 마화이니, 어쩌면 가까이 있는 물건들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터. 내 스스로 여길 나의 묘소라 칭하면서도 나는 이 안에서 눈을 감지는 않을 것이다.

 

 노끈의 매듭과 빈 술병의 수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나는, 젊었던 시절의 사제가 사제에게, 깔깔 웃으며 흘린 이야기.

 

 '노을은 지랄. 해 지는게 뭐가 좋냐. 해 뜨는거 보면서 한 잔 걸칠 때가 진짜 절경-'

 '....... 사형. 해 뜰 때 술마셨어요?'

 '-일거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청문 사형!! 청명 사형이!'

 '이새끼가?'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 단장애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지금 들어오는 햇빛은 일몰이 아니라 일출일 것임. 청문은 그렇게 단장애 동굴 입구에 걸터앉아, 품에서 술 한 병을 꺼냈음. 언제든지 청명의 흔적을 찾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한 잔 올릴 수 있게 들고 다닌 물건이었음. 잔 두개 깔고, 넘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게 가득 채우고, 그렇게 일출을 한참 바라보던 청문은 중얼거림

 

 그래. 네 말대로, 해 뜨는거 보면서 한 잔 걸치니 절경이로구나.

 '낄낄. 내 말이 맞죠?'

 

 뒈지게 늦게 오셨네요, 사형. 청문은 들려오는 환청에 일일이 답을 해주면서, 하루가 다시 꼬박 지난 후에야 화산으로 돌아옴.

 

 그리고 그 상황을 현 장문인인 현종에게 보고함. 청명이 스스로가 묘소라 했으니 입구를 막아 안식에 들 수 있게 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럼 청명이가 좋아하는 일출을 못보니까 청문은 고개를 저음. 대신 부러진 매화검 하나를 가져와 이걸로 제사를 치루고, 따로 묘역을 만들어주자고. 그렇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매화검존의 묘가 생겼고, 매화검존의 유진을 찾았다는 소식에 형식상으로나마 축하한다는 서신에 답을 쓰는 현종이었음

 

 그리고 어쩔 때는 그저 삼대 제자로서, 가끔은 13대 청자배이자 한 떄 장문인이었던 자로서 조언과 협력을 아끼지 않고 화산에 다시금 몸을 담은 청문은, 종종 술 한 병을 들고서 단장애를 찾음. 가끔 환청이 쩨쩨하게 한 병이 뭐냐고 툴툴대도 그냥 피식 웃으면서 잔을 다시 채워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