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현대까지 남은 청명이가 화산을 둘러보는 이야기
* 청명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 왜 망상은 항상 행복하지 못할까
* 화산 가본 적 없어서 어케 생긴지 모름
1. 절대 그 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
자신이 과거 매화검존이었음을 들킨 청명이. 화산의 사람들은 청명이의 마교와 구파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분노, 그리고 간혹 보여주던 그리움에 가득찬 표정의 원인을 알게 됨. 다른건 어찌 할 수가 없었음. 청명이에겐 고작 5년도 안된 과거에 당장 눈 앞에서 사형제들이 처참하게 죽고, 겨우 돌아왔나 했더니만 구파의 배신으로 인해 화산이 폭싹 망했다고 하는 것을..... 이미 지나간 과거였고 청명이가 되살려낸 것에 개입할 수도 없었으며 그 분노와 증오가 정당한 것이었으니까.
다만..... 계속 그리운 무언가를 쫒는 것만은 어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러나 저러나 결국은 화산이고, 조금이지만 청명이가 지금의 화산을 다시 제 집처럼 여길 수 있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웃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다들 행동 조심하면서 청명이에게 부담 안주려고 움직임. 사형! 내가 오늘- 해 놨다, 청명아. 걱정 말고 쉬어라. 그러나 눈치 빠른 청명이는 사형 사숙들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었지. 아해들아. 그만둬라.
나 때문에 신경써주는건 정말 고마워. 근데 그만둬.
청명아.
나에겐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이 소중한 화산이야. 그 때의 사숙, 사형들과 다를 바 없이 지금의 사숙 사형들도 다 똑같아. 그러니까 굳이 신경써서 행동할 필요 없어.
그럼.... 그럼 왜 그리도 무언가를 겹쳐보며 그리워하는거냐
....... 잊어버릴까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나날을 잊어버릴까봐, 난 그게 무서운거야. 앞으로의 화산에서 지낼 날은 많은데, 과거의 그 화산은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잊고 싶지는 않아.
그러자 윤종이 말함. 선계에서 만나면 되지 않겠느냐고. 누가 먼저 떠나든, 이미 떠난 사람이든 선계에서 다시 만나서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비무나 가끔 나눌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그에 청명이는 자조하면서 말함. 사형. 진심으로 내가 선계에 오를 수 있을거라 생각해?
이미 시체로 산을 만들고 피로 강을 만들었어. 사형이 보기엔 내가 실천하는 도가, 그 모든 죄악을 뒤덮어줄 정도로 그리 대단해보여? 진심으로 내가, 과거의 내 위대한 사형제들과, 지금의 또다른 내 가족들과 같은 곳에 갈 수 있을거라 믿는거야?
그러니까 나에겐 과거의 화산도 지금의 화산도 유일한 만남이라고 말하며 뒤돌아 가버리는 청명이. 차마 아니라는 말을 외치지 못한 채, 그저 청명이가 과거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도록, 옛 사형제들보다 더 오래 같이 있어주기 위해서 화산의 제자들은 각오를 다짐
2. 그런 일도 있었지
청명이의 두 번째 생은 끝이 아니었음. 그들과 함께 지내며 별 피해 없이 천마를 잡고, 전쟁을 종식시킨 뒤 편안하게 늙어죽었더니 청명이는 또 다시 속세에서 눈을 떴음. 아무리 내가 선계는 못간다고 확언했지만, 그런다고 이렇게 윤회를 계속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내 청명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깨달음. 또 천마가 천하를 집어삼키려 하는구나. 나는 또 막아야만 하는것이고. 그렇게 다시 화산으로 돌아가, 전쟁을 준비하고-
몇 번의 환생이 지나고 나서, 처음 삶보다 수백년이 지난 후에는 이제 문파라고 부를만한 것이 사라짐. 단전호흡이니 검기니 뭐니 하는 것들은 점차 허무맹랑한 옛 이야기로 치부되고, 그런 오랜 수련이 필요한 것보단 화약을 이용한 조총이 유행하면서 무학을 익히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문파가 축소됨. 그나마 소림 등 불교에 기반을 둔 곳은 종교적 의미로 남아있었지만 도교는 그 종교로서의 세력조차 점차 미약해져서, 어느 시점에서 청명이는 더는 화산을 찾지 않음. 그 직전 생에서 자신이 죽으면서, 이제 더는 화산이 남아있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임. 끝까지 터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역사적 가치 때문에 찾는 사관이 있을지언정 자기가 아는 화산은 아닐터이니.
어느 생부터인진 기억하지 못하지만, 결국 혼자서 천마와의 기나긴 전투를 이어나가는 청명이. 이젠 마교도 세가 줄었음. 무학에 대한 믿음이 줄어드는 것은 정사마를 가리지 않았으니, 마교에서 태어났음에도 천마의 존재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과 여전히 맹목적 믿음을 보이는 광신도끼리 싸우고 분열하다보니 결국 마교에서도 남은 것은 천마 단 하나 뿐. 이젠 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고작 두 사람이 벌이는 치열한 전투에 불과했음. 땅이 개척되면서 기가 모이는 맥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영물, 영약이라고 하는 것들도 자취를 감췄고, 영단 제조법이 소실된 것이 겹쳐 무학에 대한 이해도는 높을지언정 내력의 절대량도 줄어들었기에 과거처럼 산을 가르고 강을 건너는 신화적인 전투도 불가능해짐. 그건 천마도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절대적인 운명이었음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직감함. 이게 마지막 전투일거라고. 어차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천하를 마로 물들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졌으니 더 이상의 싸움은 의미도 없고, 다음 생에서는 진짜 일반인끼리 주먹으로 치고받는 싸움을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마지막까지 천마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은 청명이. 천마는 소멸하면서 이제 만족하느냐고 물음. 만족은 무슨. 네놈 때문에 내가 두 번째 생을 시작한 순간부터 만족은 물 건너 간 소리에요 이 양반아. 결국 이렇게 될거 대체 수백년동안 뭐하러 이랬냐는둥, 화산이 관광지로 개발되는 꼴을 내가 봐야만 하겠냐는 둥 궁시렁대면서 오랜 악연을 보내줌. 그리고 청명이 또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음.
오랜 환생과 전투로 인해 영혼은 이미 닳을대로 닳았고, 도교가 쇠락하면서 선계로 가는 문도 닫힌지 오래임. 자신이 천마를 죽였기에 시기가 조금 차이가 났을 뿐, 결국 자신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소멸하게 될 운명임은 명백했던 청명이는, 최근 몇 백년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을 찾기로 함
3. 이게 시방 뭔일이여
산 위와 아래에 줄이 연결된 채 사람을 나르고 있네.... 저걸 케이블카라고 부른댔나 뭐랬나.... 양놈들은 왤케 어려운 말만 쓴대 궁시렁궁시렁..... 대충 야구모자 푹 눌러쓰고 관광객들 사이에 휩쓸려서 이래저래 흘러가다가 겨우 화산 입구에 도착한 청명이. 어휴 높네. .... 내가 이런 데서 사형들을 굴렸네. 미안. 무력이 약해지고 나서야 수백 수천명의 사형제들에게 사과하는 청명이..... 올라야지, 산. 몇 번을 다녔을지 모르는 길을 오르기 위해 발을 들이려다가, 문득 위에서 지나가는 그림자에 고개를 올림. 그리고는-
케이블카를 탐
절대 목숨 아까워서 그런게 아니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느껴보고 싶어서 그런거다. 그냥 한번 타보고 싶어서 탄 것도 아니다. 자기암시 걸면서 창 아래로 화산을 구경하는 청명이. 그리고 케이블카에서 내렸더니.... 허으메 시방 이게 뭔일이여. 사방 천지 사람이 가득함. 심지어 잡상인도 있네??? 아이고 사형.... 몇 번째인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아무 사형들이나 이것 좀 보쇼 화산이 망했소;;
충격도 잠시. 사람들 다니기 편하게 등산로 정비된거 보고는 그냥 피식 웃으면서 그만큼 화산이 달라졌구나 함. 반대로 말하면, 자신이 사랑하던 화산은 역시나 사라졌다는 것도. 대충 삶은 계란 하나 사다가 먹으면서 천천히 등산로를 걷는 청명이. 어휴. 이 길, 내가 사형들 굴리면서 생긴 산길이었는데..... 너넨 정말 좋은 시대 태어난거다 쯧쯧하면서 꼰대력 가득한 생각을 하던 청명이는..... 이내 원래 화산파 대문이 있던 자리까지 오게 됨
과거 장인들이 손수 세웠던 전각이 아니라, 대충 관광객 유치용으로 만들어둔 전각들. 사람들은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있었고, 저 안쪽 장문인용 전각은 매점으로 탈바꿈했고...... 눈물 줄줄나는걸 모자로 가리고 아이고 화산이... 내 화산이..... 하면서 영혼 탈곡된 청명이. 전시관처럼 꾸며둔 곳에는 화산파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을 각색한 영상물이 나오고 있었음. 놀랍게도 청명이의 두 번째 삶이자 두 번째 정마대전 이야기. 청명이는 또 팝콘 하나 사다가(뭐여 이건, 강냉이에 설탕 묻혔네?) 뇸뇸 먹으면서 구경함
먼 옛날, 하늘에서 마귀가 내려와 천하를 도탄에 빠뜨리려 했을 때, 화산의 한 도인이 나서 그 마귀의 목을 베어 중원을 한 번 구해내고 등선하였다. 그리고 100년 뒤, 마귀가 다시 부활하려 했을 때 등선했던 도인은 다시 온 몸을 내던져 화산으로 돌아왔고, 그를 기다리던 후손들과 함께 검을 들었다. 마귀를 찾아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만의 길을 찾던 승려도, 어린 나이에 가문을 떠안은 젊은 검수도 있었다. 도인은 산적들을 감화시켜 마귀를 향해 창을 들게 하였고, 자신만의 이득을 쫒던 세력들을 굴복시켜 아군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더는 혼자가 아니게 된 도인은 모두와 힘을 합쳐 마귀를 몰아냈고, 중원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라는 이야기를 CG 듬뿍 묻혀서 영상으로 만들었는데, 청명이는 보면서 또 낄낄 웃음. 아 ㅋㅋㅋ 그래도 동룡이랑 이설사고가 인물은 더 낫네. 크으, 몇 백년이 지났는데도 빛나는 얼굴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와중에 아직 세력이 정정한 불교측에서 압력을 넣었는지 소림을 필두로 한 구파놈들 헛짓거리 한건 안넣은거 보소? 궁시렁궁시렁....
그렇게 기념품이라고 파는 것들 구경하고, 트래킹 코스랍시고 순한맛 수련코스 맛보고 나서 케이블카 마지막 차라고 방송이 나올 무렵, 이미 사라진 청진의 묘역에 주저앉은 청명이. 재밌네. 응. 내가 아는 화산은, 내가 그리워하는 화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밌네.
그렇지 않습니까, 다들?
영혼과 함께 몸이 허물어지는 청명이. 사형, 장문인.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소. 옛날과는 다를지언정, 화산이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잊혀질 날은 없을 것 같으니. 화산의 제자 중 선계로 가지 못하는 것은 나 혼자일테죠. 그냥 검 한자루, 조금 더 예리하고 잘 베였던 검 한자루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십쇼.
4. 선계 문 닫힌지가 언젠데?
선계 어딘가. 마치 화산을 똑 떼다 붙여놓은 것 같은 산자락의 어느 전각. 대화산파 22대 제자 백천은 대문 앞을 쓸기 위해 나왔다가 이상한 포대기를 발견함. 뭐지? 무당쪽에서 뭐 보냈나? 싶어서 뒤집어보는데.... 선명한 매화빛 눈동자를 한 아기가....
혀, 현종 장문인!! 대문 앞에 아이가 버려져 있습니다!!
화산파 사람들 다 모여 사는 곳이라 장문인이 한둘이 아님.... 아무튼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선계와 속세의 연결고리는 100년도 더 전에 끊겼는데? 하면서 모여드는 사람들. 보니까 진짜 애기임. 사람들이 이렇게나 모여서 소란피우면 울 법도 한데 울지도 않고 말똥말똥 구경만 하는 아기.... 와 그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은 13대 청자배 사람들
설마?
자, 잠시만 길 좀 내 주시게! 청문이 후다닥 달려와서는 백천이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봄. 이 기시감. 절대 잊을 수 없는 눈동자. 청문은.... 백천에게서 아이를 받아들음. 아가. 우리랑 같이 살련? 꺄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