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검존께서 좀 이상합니다
* 현화산에서 다시 구화산으로 돌아가버린 청명이
*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선계에서 살아가는 청명이가 너무나 좋음
* 행복해라....
1. 청명이는 이번에도 실패했으나, 세 번째 기회를 받았다
천마의 목을 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간 쌓여있었던 구파 및 사파들간의 골 때문에 다시 배신을 당한 화산. 반대로 당가나 남궁, 세외와 같이 다른 천우맹들이 막아서서 100년 전과 같이 폭싹 망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내부를 추스를 필요는 있었음. 거기에 더해서..... 기어이 천마를 베고 스러진 청자배 막내를 위한 추모의 시간도 필요했고
청명이는..... 몸을 버리고 난 이후 그 과정을 지켜봄. 그리고 그에 대해 자책함. 화산은 지금 건재하다고, 억지로라도 강한 척을 하며 버텨야 할 시점인데 자신의 죽음 때문에 봉문에 들어버렸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후손이자 사형제들도. 원래라면 만날 일 없었어야 하는, 그래서 속죄를 위해 내려온 청명이는 오히려 그 죽음으로 인해 또다른 죄를 지은 기분이었음. 하지만 적어도 이번엔, 불타지는 않았잖아. 죽지도 않았고, 무학이 실전되거나 구파들에게 떠밀려 몰락하지도 않았고...... 그리 위안을 삼으며 억지로 미련을 떨쳐내려는 청명이는.....
구화산에서 눈을 뜸
어라? 하지만 이런 혼란은 한 번이면 적응하는 적응의 천재 청명이. 재빠르게 지금이 어느 시점인지 파악해보는데, 무려 전쟁이 터지기 10년도 더 전임! 막 당보랑 사파 본거지 털러 다니는걸 낙으로 삼던 시기였고, 청문은 청명이를 불러다가 제자라도 하나 받아보라고 닥달을 하던 그런 시기로 돌아온 청명
이건 기회다. 둘도 없을, 순리대로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
청명이는 더는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음. 이미 100년 후에서도 최선을 다해 나름대로 깔끔한 결말을 지었음에도 결국 그게 순리가 아니었기에 미련이 남았는데, 만약 여기서 마교와의 전쟁을 말끔하게 마무리 짓는다면? 혹은 그렇지 못한다 해도 화산의 전력을 보존한 채, 100년간 전쟁을 대비할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자신은 원래 주어진 삶대로 구화산에서 안식을 맞이하고, 100년 뒤의 후손들은 자신의 죽음 때문에 슬퍼할 일 없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받아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지. 그 길로 청명이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혼자만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함
2. 장문사형! 혹시 청명사형을 기어이 파문하신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라며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청진을 바라본 청문. 청진은 다급하게 자기가 본 것을 말함. 새벽부터 청명 사형이 짐을 옮기고 있었더라고. 또 무슨 일을 벌이나 싶어 방을 들여다봤는데, 방에는 진짜 화산 사람들에게 기본으로 주어지는 이부자리와 다탁 하나밖에 안남았더라고. 아무리 청명이가 돈 욕심은 있었어도 나름 도사답게(?) 방에 물건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에 청명 사형이 뭔가 사고친게.... 없진 않겠지 아무렴. 그렇다고 해도 설마 진짜 파문해버릴줄은-
아니라고! 파문 한 적 없다고!!
그럼 대체 청명 사형이 왜 그러는겁니까? 의문만 남아버린 청진. 청문은 혹시나 싶어서 청명이가 사파놈들 족쳐서 돈 몰래 꿍쳐두는(?) 창고도 열어보는데, 거기도 텅텅 빔. 설마... .설마 아니겠지? 엊그제 좀 심하게 혼냈기로서니, 진짜 집 나간거 아니겠지??? 하고 어린애(매화검존, 실질적 천하제일인, 60세) 가출을 걱정하는 청문(대현검, 화산파 장문인, 70세). 서둘러서 아직 자는 제자들 죄다 깨워서는 청명이 찾으라고 시킴. 최대한 빨리 찾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전하고, 일단 붙잡아둬라. 무력으로 감당 못하는건 당연히 아니까, 멀리 못가게 잡으라고!!
그 사이 청명이는...... 자기가 모아둔 재물들 다 처분하고 그 돈으로 한철을 수레 가득 사서 사천으로 향하고 있었음. 전쟁 준비는 당연히 물자부터 챙겨야 하고, 나중에 느긋하게 검 만들 시간이 어딨겠어 지금 사서 줘야지. 다행히 100년 후와는 다르게 좀 비싸긴 해도 구할만은 했으니 망정이라며 냅다 당가 문 걷어차고 당보부터 찾음. 당보야아아아아! 검 좀 만들어줘라!
엥? 이거 다 한철입니까? 그것도 최고급이네?
그래. 매화검 좀 만들어줘.
어...... 장인 애들이 해줄까 모르겠네요. 당가가 남의 문파 무기 만들어주는거 별로 안좋아하던데.
태상장로라며. 찍어눌러.
....... 한철로 검이라니. 뭐 신물이라도 만드시게요?
아니. 사형제들 줄 매화검 만들건데?
아니 뭐 이 양반 전쟁이라도 준비하시나? 속으로 뜨끔 하지만 겉으로는 콱 씨 만들라면 좀 만들어봐! 하고 승질내는 청명이. 아 한철 좀 떼줄테니까 만들어줘! 기왕 만드는거 비도도 한 30개씩 들고다니고! ..... 와 그 생각을 못했네 ㅎㅎㅎ
결국 당보가 힘 좀 써서 반발세력 싹 다 누르고, 기어이 매화검을 수레 가득 채워 돌아가는 검존. 문 앞에서 당보 배웅 받다가, 문득 뒤돌아서 말함. 당보야. 너네 애들 좀 잘 챙겨줘라. 어라. 도사 형님, 정말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런 말을 다 하시고...... 그냥, 어느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 평생 여기서 살아왔으면서, 이름뿐인 장로직을 가지고 대체 뭘 해줬나 싶은거.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좀 챙겨보려고.
흠. 솔직히 아직 저에겐 썩 와닿진 않습니다만, 그 망나니 말코..... 아니 때리지 마시고. 아무튼 도사 형님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고민해 볼 가치는 있다는 뜻이겠죠.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좋은 뜻으로 했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화산으로 수레를 끌고 돌아간 청명이. 씁. 그러고 보니 말도 안하고 나왔네. 아니 근데 내가 말 안하고 자리 비운게 한두번도 아니고 상관 없지 않을까....? 하며 청문의 불호령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화산에 오름.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이고 청명아 내가 잘못했다 다 좋으니까 가출만은 안된다..... 통곡하는 청문과..... 그런 청문에게 시달린 화산의 제자들...... 이건 대체 뭔 상황이지? 하며 의문을 띄운 채 내가 이런 놈들 한철검 하나씩 쥐여주겠다고 재산 털어서 한철검을 구해왔나.....
3. 부러뜨려주랴?
한철검 선물 뿌리고, 그 뒤로도 사파놈들 본거지 털거나 청문 몰래 용병질 좀 하면서 돈을 아득바득 모아 물자 쌓아둔 청명이. 영단은 물론이고 의약품을 비롯한 각종 약재, 보존식 등 창고는 물론 단장애에까지 한가득 쌓아둠. 청문은 처음에 대체 왜 그렇게 물건을 모으냐고 몇 번 물어보기도 하고 다그쳐보기도 했지만 청명이는 대답을 하지 않음. 그냥 필요한 날이 올거라고만..... 돈이 필요하면 차라리 자기가 용돈을 줄테니까 용병질은 그만하라고해도 청명이는 고개를 내저음.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화산에게 받은 것으로 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아무튼 그렇게 물자를 비축하는 한편, 청명이는 사제, 사질들의 훈련에 조금씩 간섭하기 시작함. 첫 시작은 연무장에서 훈련을 하는 것이었음. 평소에는 혼자 산 어디에 틀어박혀서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화산제일검이자 천하삼대검수.... 를 죄다 대가리를 깨버린 사실상 천하제일인 청명의 수련을 볼 수 있다? 다들 하던거 멈추고 그거 지켜보는거임. 그리고 보여준 모습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기초훈련이었음. 어디서 바위 하나 구해다가 그거 들고 보법 밟고, 절벽 한바퀴 뛰고 오고,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등등..... 이제 갓 입문한 애들이나 할법한 훈련을 하고 있음. 아닐텐데? 저 괴물처럼 강한 청명사형이라면 분명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텐데? 하고 유심히 지켜보지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도록 청명은 기초를 빠뜨리지 않음. 물론 검을 들고 육합검부터 나름의 수련을 한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초에 쏟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음. 결국 누군가가 나서서 물어봄. 기초 훈련은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청명은 그에 심드렁하게 답함
기초에 끝이 존재할 리가 있나. 네가 휘두르는 그 육합검의 첫 내리치기는 하체와 손목을 통해 나오고, 무인이란 몸을 쓰는 자인데 그 몸을 절제하기 위한 훈련을 어찌 끝을 바라볼 생각을 하냐?
그리고 그에 대해..... 사제들과 사질들은 자극을 받음. 청명 사형의 재능은 분명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말을 붙이기도 아까울 정도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꽃피운 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은 기초에서 시작되었다고. 즉,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김. 그래서 점차 새벽부터 청명이를 따라,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남.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청명이는 검술에 대해서도 개입을 시작함. 원래 사부와 사제의 1대 1 관계로 검술을 전수받는 시스템인지라 그 방식에 간섭하는게 좋을 리가 없을텐데, 그 청명이 직접 지도한다고 하니 아쉬운 소리 나오기 전에 스승이고 제자고 둘 다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는거임. 칠매검에 대한 이해도는 좋은데, 그건 너한테 한정된 이야기고. 니 제자 좀 봐라. 너보다 작잖아. 더 짧게 잡아. 더, 더더더. 그 상태로 네 스승이 보여준 검로를 네 간격에 맞춰 끊어친다고 의식해라. 아니, 무작정 짧게 치라는게 아니라. 여기서 육합검 한번 해봐. 그래. 육합검은 잘 배웠네. 그 초식이 그대로 이어지는거다. 너 니 스승이 보여준 거리에서 육합검으로 공격할 수 있어? 못하지? 육합검으로 닿는 거리에 서봐. 그게 네 간격이니까 정확히 기억해둬라. 거기서 일격부터. 흐르듯 끊기지 않고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게 최종 목표가 아냐. 어떤 상황에서라도, 어떤 초식부터라도 시작하할 수 있고 다른 검법으로 변환할 수 있게 되는게 궁극적으로 노려야 할 부분이지.
검존이 이렇게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겠음. 자연스럽게 경청하고, 그에 맞춰서 자신의 검술을 다시 다듬고...... 마음같아서는 100년 후처럼 죄다 닥달해서 억지로라도 끌고 가고 싶었지만, 그게 정상적인 화산이 아니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기에 서서히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는 방법을 택한 청명이. 점점 화산 제자들 사이에선 청명이에 대한 거리감이 사라지고, 기어이 하루는 누군가가 청명에게 가르침을 청함. 몇 년 전에 청명에게 대담하게 가르침 청했다가 이해 못한다고 뚜드리 맞은 애임. 또 패나? 싶어서 덜덜 떨면서도 부탁드린다고 고개 숙이는데, 청명이는 검집채로 검 들고 섬. 뭐하냐? 배우고 싶다며?
사질이 공격하는 것을 흘리거나 막기만 하면서 그 틈을 검으로 툭툭 치는 검존. 여기, 왜 비워두냐? 부러뜨려달라고 시위하냐? 아, 아닙니다! 이상하게 이 검로에서 빠른 변환이 잘 안돼서- 당연하지. 내가 이 거리에 서 있으니. 애초에 더 먼 거리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검법인데, 내가 그 거리보다 가까이 들어온 순간 생각을 바꿨어야지. 아니면 늦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뒤로 빠져서 재정비를 노리던가. 더 나은 방법으로는.... 씁. 이건 화산 본연의 검법이 아니라서 안가르치려고 했는데.....
하면서 '검법' 이 아닌 '싸움법'을 알려주는 청명이. 검을 놓고 주먹으로 치라던가, 무릎으로 턱을 깨버리라던가 하는 소리에 그건 검법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하고 얼떨떨하게 묻자..... 뭐래? 넌 뒤통수에 짱돌 꼿혀도 아 이건 검법이 아니라 뒷골목 왈패들 싸움같네요 헤헤 하면서 죽을래? 싸움에는 비겁이 없어! 어차피 살아남는 사람이 승자야!!
그 검법만으로도 중원재패 가능한게 장로님이시잖아요...... 라는 말은 삼킨 사질. 어쨌든 가르침에 감사드린다며 포권하고 돌아가자, 청명이도 좀 쉬어보려고 뒤를 돌아보는데...... 눈 반짝이면서 검 들고 흠흠 눈치보는 무수한 사제와 사질들의 가르침 요청이......
4. 지금 해
너 초식 하나 만드는거 있잖아. 미루지 말고 지금 만들어라. 대뜸 나온 말에 얼떨떨하게 어찌 알았냐고 물어보는 당보. 씁. 언젠가 완성되면 형님 뒤통수에 예쁘게 꼿아드리려고- 당보야 들린다.
지난번 청명이가 다녀간 뒤로 생각이 많았던 당보. 암만 당가에서 내놓은 망나니같다곤 하지만 나름 나이도 있고 경험도 많으니 청명의 말이 틀린게 없다고 생각하고 전적으로 당가주 및 젊은애들 결정 밀어주면서 조언하는, 진짜 태상장로의 역할을 수행해나가며 당가 내 주가를 올리는 중이었음. 그런데 이번에는 또 뜬금없이 초식 만들라고 한다? 청명이를 나름 오래 보고 온 사람으로서, 이건 분명 뭐가 있는거임. 다만 자신이 청명에게, 청명이 자신에게 서로의 초식을 숨김 없이 보여줄 정도로 신뢰하는 사이이니 언젠가 청명이 직접 말해주리라 믿고 있을 뿐.
그리고 독 말이다.
에이, 그거 다 애들 쓰라고 있는거-
만들어. 아주 많이. 최대한 많이 쌓아둬라.
처음 독 맞고 안통한다고 역정내면서 당보를 탈탈 털어버린 전적이 있는 청명이 입에서 나오기엔 영 이질적인 말이었음. 하지만 당보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듯, 청명이도 이유 없는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었음. 그리고 그건, 청명이의 범위 안에 들어있는 사람에겐 절대 해가 되지 않는 것들 뿐이지.
필요한 때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잘 아네.
난세가 온다는 것과 같은 뜻이구요.
...... 그래.
형님이 그렇게 말해야 할 정도로, 지독하고 긴 난세가......
어찌 알았는지는 묻지 않는 당보. 할 일이 많겠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당보는, 슬쩍 뒤를 돌아 청명에게 말함. 그래도 혼자 떠안고 다니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도사 형님.
5. 이제야 안식을 얻을 수 있겠어
결국 시작된 마교와의 전쟁. 화산은 당가, 그리고 청명이 두 발로 뛰어다니면서 협력관계 얻어낸 세외와 위치상 피해가 극심할게 자명한데다가 진짜 도만 닦는 곤륜같은 애들까지 끌어들임. 다른 구파나 세가들은 수치도 모르고 야만인들과 손잡는다고 지랄나는데, 청명이는 '그러니 그 야만인과 다를 바 없는 화산의 도움을 바랄 생각은 하지도 마라' 라면서 선 딱 그어버림. 청문은 청명이 멋대로 타 문파와의 관계에 끼어드는 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음. 당연한 것이, 근 10년간 전쟁이 터질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아득바득 전쟁 준비한게 청명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서로 손을 잡는 것이 더 이득인 것을 청명이가 모를 리도 없는데 굳이 선을 긋는 것은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임
화산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고 보존되는데 반해 다른 구파들은 조금씩 마모되어감. 니가 가네 내가 가네 어쩌네 서로 싸우다가 회의 파토나고, 시기 놓쳐서 기습받고 하는 것이 대부분. 반대로 화산쪽은 자연스럽게 화산이 앞장서면 그 뒤를 당가가 받치고, 새외가 힘을 실어주었음. 전투 중 부상자들을 옮기고 인원을 교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짜둬서 그럭저럭 버텨내는 화산. 그리고 결국 천마의 위치가 드러나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해야 하는 떄가 옴
처음 약속한대로, 청문을 비롯한 화산과 각 문파들 최고 수뇌부들, 그리고 차후 문파를 이끌어갈 후기지수들을 제외한 각 문파 고수들이 중심이 되어 정예군을 꾸림. 청문은 다시 생각해보자고, 우리도 같이 가면 조금이나마 피해가 줄지 않겠느냐고 설득하려 하지만 청명이는 딱 잘라버림. 그러다가 전멸하면 그때야말로 뒤가 없다고. 마교놈들 치하에서 시체밭을 구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끄는 자들과 쫒고자 하는 자들이 남아있어야만 기회를 노릴 수 있는거라고. 그리고 그 정예군 중에서도 최고 고수인 청명이는 전전생과 전생,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청문에게 포권을 하며 깊게 절을 함. 화산의 청명. 장문인의 명을 받아, 천하를 도탄에 빠뜨린 천마의 목을 베고 이 땅에 마(魔)를 멸절시키겠습니다.
왜..... 왜 돌아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느냐, 청명아
차마 말하지 못한 청문. 그렇게 각자의 결의를 가지고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고수들을 배웅하고..... 전쟁 중에도 끝까지 숨겨온 당보의 새로운 초식과 100년 후에서 배워온 자하신공까지 끌어낸 청명, 절대 의미없는 죽음따윈 맞이하지 않겠다는 듯 전력으로 마교를 상대한 정예군은, 끝끝내 천마를 잡는데 성공함.
하, 이거였군. 천마를 세 번이나 마주하고 나서야 청명이는 천마가 다시 강림하는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음. 내력이 몸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어딘가와 연결되어 순환하고 있으니, 죽여도 죽여도 그 고리 안에서 다시 돌아올 수밖에. 그래서 청명이는, 검에 마지막으로 남은 내력을 죄다 쥐어짜넣어 그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림. 누구에게나 공평해야지, 삶과 죽음은. 너 또한 한 번의 죽음으로 한 번의 삶을 마무리해라.
화산파의 매화검존 청명이 천마를 죽였다! 그 소식이 온 중원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음. 아직 전력을 보존하고 있던 문파들이 천마의 재림을 위해 몸을 숨기려던 마교들을 색출하여 잡고,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나서야 다들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가 있었음. 그리고 청명이는...... 당보에게 들쳐 업힌 채 돌아온 검존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했음
청명의 부상은 깊었음. 어지간한 무인이었어도 그 자리에서 죽었을 정도로. 겨우겨우 가는 숨 붙들고 종종 발작하는 몸 억눌러가며 화산으로 돌아왔는데도 청명이는 눈을 뜨지 못함. 그렇게 겨울이 가고, 화산에 첫 매화가 피어난 날이었음
방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잠들어있던 청문은 눈을 뜸. 이 발소리와 기척. 모를 리가 있나. 청명이냐. 들어오거라. 그러나 청명이는, 청명이의 그림자는 꼼짝도 하지 않음. 다시 청명이를 부르면서 직접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청명이가 다급하게 말함
문 열지 마쇼, 장문사형. 대답도 하지 말고
......
내가 화산에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
청문은 직감했음. 인사를 하러 왔구나. 자신이 이미 청명이를 두 번 불렀으니 한 번만 더 부르면 자연스레 끌려가겠지. 반대로 청명이의 말에 세 번 대답하면, 자신이 끌려갈 것이고. 청명이는 문 밖에서 담담히 말함. 겨울이 끝나 절벽이 녹았으니 아직 숨어있는 마교놈들이 올라올 수도 있소. 빙궁에선 한철을, 야수궁에선 약초를 거래하기로 약조해두었으니 잘 챙기시고. 그런 것들. 청문에게 말하지 못한, 자신이 없는 화산을 위해 대비해둔 것들을 담담히 읊는 청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좌한 채, 자신의 이야기를 함.
사형, 전쟁이 나기 거진 10년쯤 전에 참으로 재밌으면서도 비참한 꿈을 꾸었소이다. 전쟁 때문에 화산이 망했는데, 내가 100년 후에 뚝 떨어졌지 뭐요. 막말로 돈도 인재도 무학도 없는 화산을 억지로 이끌고, 그 후손들 가슴에 자신감 하나 불어넣어주느라 몇 년을 고생했는지 모를거요. 매화 꽃잎 하나에도 벌벌 떨면서 도망치던 사파새끼들은 지들끼리 연합 하나 만들고 놀지 않나, 빌어처먹을 숭산 땡중들은 어떻게든 화산을 깎아내리려고 별 발악을 하질 않나..... 기어이 마교에 천마놈이 또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겨우겨우 또 목 따놨더니, 원시천존인지 옥황상제인지 염라대왕인지 모를 누군가가 순리가 아니랍시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꿈에서 깰 수 있었소. 참으로 웃긴 일이지. 내 평생 누려왔던 것들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거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더이다. 그래서 이 미약한 힘 좀 보태 보았소.
100년 후의 화산은 제 꿈과는 분명히 다르겠지요.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100년 후의 화산에 내가 껴있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니....... 그래도 사형. 내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소.
100년 후에도, 화산에는 매화가 필겁니다.
정말이지.... 이 당연한 하나를 위해서 대체 얼마나 돌아온건지...... 언제 청진이놈이 그러더군요. 돌아가는 길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예, 그 말대롭니다. 재밌었습니다. 무척이나.
꿈 속에서 10년을 보내고, 꿈 밖에서 10년을 보내고, 전쟁터에서 또 10년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10년같은 1년들이었고, 100년같은 10년들이었소. 그래도 그 300년, 화산이 있었고 화산에 있었기에 이 사제는 참으로 행복한 놈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들 기뻐하시면 됩니다. 검으로서 살아온 매화검존이 드디어 인간으로서 안식을 얻은 날이니.
이 사제, 사형보다 먼저 간다고 타박하지는 마시고, 부디 보중하시어 오래 살다가 오십쇼, 장문사형.
훅, 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청명이의 그림자. 청명아.....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르면서 세 번의 부름을 다 한 청문. 문을 열자 멀리서 어스름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음. 청문은 마당을 쓸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나오는 막내를 붙잡고 말함. 장례 준비를 해야겠구나. 모두를 깨우고, 지필묵을 가져다주렴.
화산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수많은 문파들이 매화검존의 죽음을 애도하러 왔음, 특히나 당가는 오히려 화산보다 적극적으로 장례를 도왔고, 당보는 시신이 있는 제단 옆에서 떨어지질 않은 채 잔 두개를 놓고 술을 채워넣기를 반복함. 빙궁도 야수궁도 그 먼길 마다하지 않고 49제가 끝나기 전에 화산을 올랐음
화산은 청명이라는 도호를 더는 주지 않기로 함. 화산의 청명은 단 하나면 족하다는 의미로. 그리고는 청명이가 말한 것을, 그가 꾼 꿈을 허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다들 각오를 다졌음.
시간은 흘러, 100년이 지남
6. 화산을 보러 왔습니다
백천은 현판 아래에서 신기한듯 손을 뻗는 어린아이와, 그 아이의 반대손을 꼭 잡고 있는 인상 좋은 중년 남자를 보다가 대문을 열고 안으로 안내함. 드시지요. 곧 해가 질 것 같으니, 지붕을 나눠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참..... 백천은 물론이고 수련하고 돌아온 유이설과 삼대제자의 윤종, 조걸. 마교전쟁 이후 무학을 익히고 싶어 하는 여식들에게 열린 길 중 하나를 찾아 온 당소소(이대제자)까지 그 두 사람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음. 어쩐지 저 중년 남성은 화산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안내 없이도 길을 찾아가고 있었고,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사방천지 뛰어다니다가 꺄르륵 웃었음. 아이고 위험하다! 하면서 백천이 아이를 안아들자 멀뚱하게 얼굴 쳐다보다가 영웅건 당겨서 풀어버리고, 무뚝뚝하다 못해 한기가 서리는 유이설 옆에서도 빵긋 웃으면서 다리 꼬옥 껴안았다가 저 멀리서 남자가 부르자 쪼르르 달려가버림.
화산에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들리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고개 내미는 제자들과 장로님.... 그리고 장문인까지. 손님이 온 것을 알고 포권하면서 화산의 장문인 현종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중년 남성은 맞포권으로 정중하게 인사함. 그리고는 잠시 아이를 제자들에게 맡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데, 어쩐지 먼 선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현종
화산은 그대들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손님이 말하기엔 심히 이질감이 드는 말이었지만 현종은 자연스럽게 대답함
저희의 자부심이지요.
그 말에 환히 웃는 남성과 뭐가 그리 좋은지 여전히 빵긋 웃고 있는 아이.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낙안봉에 올라봐야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아이를 안아들고 낙안봉으로 향하는 남성을, 화산의 제자들은 뒤를 따라 오름.
그래, 청명아. 네 말대로 화산에는 여전히 매화가 피는구나.
그리 말하며, 아이를 안고서 순식간에 사라진 남성. 당황하는 제자들 사이에서 걸어나온 현종이 조용히 말함. 선조께서 오랜만에 화산을 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예를 갖추도록 하자꾸나.